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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수옥 시인 / 곰국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4.

신수옥 시인 / 곰국

 

 

차례로 몸살 앓은 두 아들 돌보느라

뼈마디가 흐믈대던 며칠

이불 쓰고 눕자 열이 펄펄 나네

 

남편이 친정에 데려다주어

결혼 전 쓰던 방에 쓰러졌는데

애들 걱정 남편 걱정이 거기까지 따라오네

 

온종일 곰국이 끓네

칠순을 바라보는 엄마의 애간장도

바글바글 함께 끓네

집안 가득 냄새 퍼지고

엄마의 마음도 보약처럼 퍼지네

 

사흘 꼬박 앓고 일어나 보니

주름진 엄마 얼굴

입술마저 부르텄네

흰머리가 어느새 저리 늘었을까

 

남은 곰국 몽땅 싸주며

사위에게 부탁하네

에미 좀 잘 돌봐주게

 

배웅하며 흔드는 손

붉어진 눈시울로 가져가네

엄마도 몸살 중이었다는

남편의 조심스러운 말

 

복받치는 서러움에 떨군 고개

눈물이 뜨겁게 끓어 넘치네

 

 


 

신수옥 시인 / 바늘구멍

 

 

바늘귀에 실을 끼우려던 엄마

눈살을 찌푸리다가

애꾸눈을 하다가

실 끄트머리에 침 묻혀 도르르 말아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구경하던 내게 내밀었다

 

바늘구멍 한가운데로 쏘옥

실을 끼워드리면

반짝이는 내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나도 너 같은 때가 있었는데

홈질처럼 편안한 웃음으로 말씀하셨다

 

수십 년 세월이 실타래처럼 빠르게 풀려

엄마 되고 할머니 되고 보니

바늘귀에 실 한번 끼우려면

침침한 눈을 몇 번이고 문질러야 한다

 

바느질대 위에 날개 펴고 앉은

나비목目 투명나비과科 돋보기가

언제든 바늘구멍 따라

날아오를 채비를 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좁아만 가는 바늘구멍

 

 


 

신수옥 시인

서울 출생. 이화여대 화학과 졸업. 同 대학 대학원 박사과정 이수. 이화여대, 서울산업대 강사 역임. 2013년 4월 《한국수필》 등단. 2014년 7월 수필집 『보석을 캐는 시간』 출간. 2014년 《문학나무》 가을호에 시부문 당선되어 등단. 2015년 <젊은 시 12인>에 선정. 시집 <사라진 요리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