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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현락 시인 / 금빛 물고기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6.

신현락 시인 / 금빛 물고기

-김종삼 시풍으로

 

 

아이가 곁에 와서 종이를 놓고 간다

색종이로 곱게 접은 물고기 한 마리

바다 속을 헤엄쳐 간다

금빛이다

 

아이가 돌아간 빈 교실에

초록금빛 물결 출렁인다

듣기로는 심해의 어떤 물고기는

수천 리 떨어진 곳에서도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소리통로가 있다고 한다

아이에게도 내가 모르는

바다로 통하는

황금열쇠가 있나 보다

 

일상은 늘 남루하다 해도

그 아이의 바다처럼

금빛 물고기처럼

빈 교실에 출렁이는 물결처럼

 

 


 

 

신현락 시인 / 금

 

 

한때는 그랬네.

땅 위에 금을 그으며

여기 넘어오면 안 돼, 넘어오면 죽는 거야, 하면서

네 편 내 편 서로 금을 밟지 않으려고

금 밖에서 빙글빙글 돌았던 적이 있었네.

나도 그랬네.

누군가 금만 그으면

여기에서 저기로 넘어가지 못하는 줄 알았네.

그날 밤 나와 너 사이에 그어진 금을

내 새끼손가락은 얼마나 넘어가고 싶었던가.

땅 위에 금을 그으며

여기는 내 집이야.

순금으로 지은 집이라고 착각한 옛날도 있었네.

나도 너의 금이었을까.

넘어가서는 안 되는 국경처럼

머나먼 금기의 이역에서

깃발만 펄럭이고 있었을까.

한때는 너와 나

금 밖에서 서성거렸으나

이제는 금 안에서 금 밖을 기웃거리네.

지금 저 금 밖에서 우는 사람아

그곳은 금 밖이 아니고 금 안이라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금 안에서 우는 거라네.

 

 


 

신현락 시인

1960년 경기 화성 출생. 인천교육대학 졸업.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박사. 1992년 《충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 『따뜻한 물방울』과 『풍경의 모서리, 혹은 그 옆』, 『히말라야 독수리』와 논문집『한국현대시와 동양의 자연관』이 있음. 평창 용산초등학교 교사. 현재 수원 당수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