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현 시인 / 춘화현상
바닥까지 말라붙었던 공원 수로에 물이 흐른다는 것은 노란 창포꽃이 피었다는 뜻 봄이 와도 꿋꿋하던 당신이 기어이 눅진한 이별의 강 건너갔다는 것 한 시절 어둠 속에 잠겨 있던 꽃빛깔 환하게 열어 줬다는 것과 같다
다가 올 때 떠날 것 미리 알고 있었지만 영하의 시린 쓰라림 앞에서도 이별을 애써 망설이던 당신이 문득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바람결에 부드럽게 내비친 것은 어둡고 추운 시간 견실하게 지나야 슬픔의 수량 풍부해지고 젖은 꽃빛 더욱 곱다는 걸 확인하기 위한 것 비밀스레 꽁꽁 싸매두었던 함초롬한 치맛자락 봄볕 아래 흔연스레 펼쳐 보라는 당부의 어루만짐이었던 것 캄캄하게 얼어붙은 마음 외면하지 못하고 서로 부둥켜안았던 시간 비로소 떨치고 떠남이 오히려 진한 사랑이 되는 늦겨울과 늦봄의 변주곡 그 한가운데 노란 창포꽃 피고 또 진다
서승현 시인 / 동지 팥죽
파-앗 ~!
동지의 캄캄한 가슴에 적중되는 부활의 신호탄
검붉게 어우러져 온 몸 환해지는 해돋이빛 온기 한 그릇
서승현 시인 / 유효기간 만료
프로이트가 지그시 내려다보는 책장 건너편 기왓장에는 그리다만 흰 매화 꽃봉오리에서 삼겹살 굽던 냄새가 부글거리며 흘러내리고 꽃길만 걷자며 비틀대는 캘리그라피 액자에는 물 바랜 청수국이 약속을 체념한 채 바스스 흩어진다
당분 가득한 신의 향기를 배달해 줄 미네랄 스쿠터는 아직 도착도 하지 않았는데 소소하게 피어나던 옛사랑의 희미한 그림자도 폐차 직전 엔진처럼 붉은 녹이 슬고 허공에 박제된 채 낡아가는 은청빛 나비 날개
넌 인생 4막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 거니? 이드* 가든에 새로 입성할 그 무엇은 무엇이니? 창백한 원숭이처럼 늙어버린 60갑자 갱신한 여자가 지난밤의 불면을 툴툴거리며 살균청소기로 구겨진 침대를 문지른다
인터넷 뉴스에서
콧구멍이 찌그러지도록 키스 하고 있는 남녀는 지구상 가장 힘센 나라의 노老대통령 부부 부국**(富國, 父國)을 쫓는 슈퍼에고(superego)는 오늘도 무사하게 쪽! 쪽! 쪽?
힘없이 오글거리는 쾌락의 진딧물을 토드의 망치***로 쿵쿵 내리쳐 본다
* 이드: 개인의 무의식 속에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본능적 에너지의 원천 ** 부국: 이상 국가. *** 토드의 망치: 잠재능력을 다른 것에 몰아주기 할 때 쓰는 게임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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