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현아 시인 / 엄마의 탄생
오늘 나는 만나는 것마다 붙잡고 내 아가를 낳아다오, 봄이 나에게 탄생처럼 아침을 열어 보이고, 내 아가를 낳아다오, 목련은 배냇저고리처럼 흰 꽃잎을 떨어뜨리는데, 내 아가를 다오, 하늘이 까르르 햇살을, 내 아가를, 구름은 잠투정 섞인 빗방울을, 내 아가를 낳아다오, 달빛이 나를 꼭 닮은 그림자 하나 누인다, 내 아가, 밤은 말랑말랑 살결로 안겨 오고, 내 아가를 다오, 잠은 옹알이 같은 꿈을 선물하는데, 그래서 오늘부터 나는 엄마, 자궁이 없는, 하지만 어디에나 아가가 있는.
지현아 시인 / 맏이
이가 몽땅 부러지는 밤 부러진 이를 입안 가득 물고 있는 꿈 다 잃은 것 같고 다 가진 것 같은 순간 가지런한 말들이 똑똑 부러져 입안을 할퀴는 잠 고인 침이 목구멍으로 달아난다 나에게 들키지 않고 혹은 내가 짐짓 외면한
이불 속에서 입안에서 와글대는 하소연들 엎어진 퍼즐같이 되었지만 아직 혼날 순 없답니다 좀 더 근사하면 좋았겠지만 이 꼴을 보며 유감이지만 만에 하나 잃어버린 조각이 있다면 그곳엔 꽃을 심을게요
커다란 문처럼 정원을 지키는 두 앞니 치열을 읽는 게 혀의 취미라서 교정은 할수록 어렵다고 사전에 치치카카 잇새에 꽃이 피었다는 설화
백색은색 접착제로 밤새 부러진 잇조각들을 붙이니 또 하룻밤이 입을 앙다문다
집을 나서 내가 웃으면 실금이 간 이들이 덩달아 와글대고
어쩌다 그 틈을 비집어 꽃 한 송이 내비치는 날도 있었다
- 2016년 <시와 문화>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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