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겸 시인 / 꽃들도 때가 되면 떠난다
허리 굽은 초로의 사내 검정가방 옆에 끼고 플라타너스 가로수길 걸어간다
잠시 멈추고 길 옆 화단을 본다 채송화 봉숭아는 사라지고 금계국 메리골드 페튜니아 낯선 꽃들이 자리 잡고 있다 모르는 사이 꽃들의 세계도 주인이 바뀐 것이다
사내가 푸른 기운이 남아 있는 플라타너스 잎사귀를 한 장 두 장 따더니 길모퉁이에 차곡차곡 쌓아 놓고 있다 젊은 날 함부로 대했던 푸른 잎사귀들 머지않아 탈색 되어 추락의 고통 속에서 신음 할 것이다
자꾸만 느려지는 걸음 휘청거리더니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는다 먹이를 찾던 늙은 길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낡은 의자를 수레에 싣고 가던 노인이 잠시 서 서 먹이를 꺼내 길고양이에게 건네준다 눈을 끔벅거리며 온기를 뿜어내는 길고양이 노인도 눈을 끔벅거린다
탄력을 잃어버린 햇살이 빌딩 벽에 부딪히고 현관문밖에는 낡은 의자들이 널브러져 있다 오랜 세월 나를 지탱해 주던 저 의자 삐걱거리며 마찰음 날 때마다 심장을 쿡쿡 찌르던 웃음들 버려진 의자위로 나뭇잎 떨어진다 어둠속에서 낙엽을 긁어모아 조용히 수습하고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22년 4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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