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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생수 시인 / 회춘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19.

김생수 시인 / 회춘

 

 

봄이 오면

누구나 설레는 기대 하나쯤 가져도 좋으리라

지금은 색깔조차 누렇게 바랜

그 봄에 서성이던 그리움들을 켜들고

아지랑이 감실거리는 들판이나

봄볕의 애무에 황홀히 취한 강변에 나가

저물도록 누군가를 기다려도 좋으리라

회한이 더께로 앉은 옛 서랍을

두근거리며 열면

기다렸다는 듯 안겨오는 초록빛 이야기들

촉촉히 젖은 얼굴 한 장 한 장 꽃바람에 널며

세상에 있는 사람

세상에 없는 사람

하염없이 불러봐도 좋으리라

다시 봄이 오면

누구나 설레는 편지 한 통을 들고

오래 잊었던 창문을 두드려도 좋으리라.

 

 


 

 

김생수 시인 / 아버지 1

 

 

관심좀 가져 달라고

아버지 관절이 소리친다

아구! 아구구!

새벽 안방에서 아버지 신음하신다

건넌방 아들방에 대고

아버지 무릎 관절이 자꾸 나를 부른다

아버지 신음소리만이라도 좋았던

새벽의 그 소리

아프다는 소리만이라도 살아 있어 좋았던

아버지 그 소리

밖에 겨울바람 불고 눈 내려요

아버지 케이비에스 뉴스 나와요

먼 옛날에 새벽 종소리 같던 아버지 신음소리

내 무릎 관절에 굽이굽이 들려 온다.

 

 


 

 

김생수 시인 / 어머니 4

―참빗

 

 

시장통에서 5,000원에 4마리나 주는 가자미를 사왔다

끓일까 졸일까 구울까 하다가 소금 뿌려 구웠다

가자미 살을 발라 탁배기 안주로 게슴츠레 먹었다

또 다시 세상은 석양에 빗겨 취하고

가자미는 뼈만 남아 옛날 엄마 참빗이 되었다

빗살도 고운 엄마 참빗이 되었다

무엇을 곱게 빗으라는 걸까 뼈들은

무엇을 잘 빗으라는 걸까 뼈들은

좌로 우로 가지런히 날선 뼈들의 빛이

햇살 같기도, 엄마 같기도 하다.

 

 


 

김생수 시인

춘천에서 출생. 1995년 《문예한국》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고요한 것이 아름답다』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