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생수 시인 / 회춘
봄이 오면 누구나 설레는 기대 하나쯤 가져도 좋으리라 지금은 색깔조차 누렇게 바랜 그 봄에 서성이던 그리움들을 켜들고 아지랑이 감실거리는 들판이나 봄볕의 애무에 황홀히 취한 강변에 나가 저물도록 누군가를 기다려도 좋으리라 회한이 더께로 앉은 옛 서랍을 두근거리며 열면 기다렸다는 듯 안겨오는 초록빛 이야기들 촉촉히 젖은 얼굴 한 장 한 장 꽃바람에 널며 세상에 있는 사람 세상에 없는 사람 하염없이 불러봐도 좋으리라 다시 봄이 오면 누구나 설레는 편지 한 통을 들고 오래 잊었던 창문을 두드려도 좋으리라.
김생수 시인 / 아버지 1
관심좀 가져 달라고 아버지 관절이 소리친다 아구! 아구구! 새벽 안방에서 아버지 신음하신다 건넌방 아들방에 대고 아버지 무릎 관절이 자꾸 나를 부른다 아버지 신음소리만이라도 좋았던 새벽의 그 소리 아프다는 소리만이라도 살아 있어 좋았던 아버지 그 소리 밖에 겨울바람 불고 눈 내려요 아버지 케이비에스 뉴스 나와요 먼 옛날에 새벽 종소리 같던 아버지 신음소리 내 무릎 관절에 굽이굽이 들려 온다.
김생수 시인 / 어머니 4 ―참빗
시장통에서 5,000원에 4마리나 주는 가자미를 사왔다 끓일까 졸일까 구울까 하다가 소금 뿌려 구웠다 가자미 살을 발라 탁배기 안주로 게슴츠레 먹었다 또 다시 세상은 석양에 빗겨 취하고 가자미는 뼈만 남아 옛날 엄마 참빗이 되었다 빗살도 고운 엄마 참빗이 되었다 무엇을 곱게 빗으라는 걸까 뼈들은 무엇을 잘 빗으라는 걸까 뼈들은 좌로 우로 가지런히 날선 뼈들의 빛이 햇살 같기도, 엄마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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