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원 시인 / 현관
나는 밤의 현관에 서 있는 사람
현관에 고인 찬바람 속의 사람
한 발은 안에 한 발은 밖에
가물가물 걸치고
가만히 서서 발에 물집이 잡히는 사람
고개 든 채 잠든 오령의 멧누에 꿈속처럼
무릎 없이 변모를 기다리는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시집 『다만 보라를 듣다』(민음사, 2021) 중에서
강기원 시인 / 나비잠자리 다리
누가 이렇게 예쁜 이름을 지어 줬을까?
나비잠자리 다리 아래를 지나며 우리가 될 수 없던 우리는 서로에게 물어보았지
나비도 잠자리도 올 리 없는 겨울에 나비잠자리 가느다란 다리처럼 위태로운 날들을 건넜지
부서지기 쉬운 담청색 날개 눈부시게 산란하는 검고 푸른빛
원인을 알 수 없는 편두통이 계속되었어
나비 닮은 잠자리 나비잠자리 잠자리 닮은 나비 잠자리나비
투명잠자리나비는 날개가 너무 투명해서 그저 아른거리는 것 같다고 네가 말했던가
나비잠자리에서 잠자리나비로 끝날 사랑을 말 하는 것 같았는데
다리를 건너와 뒤돌아보니 다리는 온데간데없이 방금 전까지 들었던 네 목소리는 잔향도 없이
계절을 잊고 잘못 찾아든 곤충처럼 나는 혼자 서 있네
갈림길 많은 여우길 한가운데에
시집 『다만 보라를 듣다』(민음사, 202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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