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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기원 시인 / 현관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23.

강기원 시인 / 현관

 

 

나는 밤의 현관에 서 있는 사람

 

현관에 고인 찬바람 속의 사람

 

한 발은 안에

한 발은 밖에

 

가물가물 걸치고

 

가만히 서서 발에 물집이 잡히는 사람

 

고개 든 채 잠든 오령의 멧누에 꿈속처럼

 

무릎 없이 변모를 기다리는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시집 『다만 보라를 듣다』(민음사, 2021) 중에서

 

 


 

 

강기원 시인 / 나비잠자리 다리

 

 

누가 이렇게 예쁜 이름을 지어 줬을까?

 

나비잠자리 다리 아래를 지나며

우리가 될 수 없던 우리는

서로에게 물어보았지

 

나비도 잠자리도 올 리 없는 겨울에

나비잠자리 가느다란 다리처럼 위태로운 날들을 건넜지

 

부서지기 쉬운 담청색 날개

눈부시게 산란하는

검고 푸른빛

 

원인을 알 수 없는 편두통이 계속되었어

 

나비 닮은 잠자리 나비잠자리

잠자리 닮은 나비 잠자리나비

 

투명잠자리나비는 날개가 너무 투명해서 그저

아른거리는 것 같다고 네가 말했던가

 

나비잠자리에서 잠자리나비로 끝날 사랑을 말 하는 것 같았는데

 

다리를 건너와 뒤돌아보니

다리는 온데간데없이

방금 전까지 들었던 네 목소리는 잔향도 없이

 

계절을 잊고 잘못 찾아든 곤충처럼

나는 혼자 서 있네

 

갈림길 많은 여우길 한가운데에

 

시집 『다만 보라를 듣다』(민음사, 2021) 중에서

 

 


 

강기원(康起原) 시인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1997년〈요셉보이스의 모자〉외 4편으로 《작가세계》신인문학상 당선. 2014년〈쌍봉낙타〉외 1편 《동시마중》에 발표하며 동시 작품활동 시작. 시집 『고양이 힘줄로 만든 하프』, 『바다로 가득 찬 책』,『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 『지중해의 피』, 『다만 보라를 듣다』와 시화집 『내안의 붉은 사막』,. 동시집 『토마토개구리』, 『눈치보는 넙치』, 『지느러미 달린 책』 출간. 2006년 제25회 김수영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