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 시인 / 독작 獨酌
두 홉짜리 소주병을 땄다 병과 잔 사이는 한 치가 못 되었다 그 사이에 삼라만상의 근심이 깊었다 주섬거리지 않고 탁, 털어 넣었다 안주는 오래 물색하였다 달이 떴고 밤새 소리도 펼쳐 있었다 강물의 물비늘 두어 장을 쭉 찢었다 질겅거렸다 두 홉짜리 소주병이 비었다 강물의 수위가 한 치쯤 낮아져 있었다 노을에서 시작하였으나 어느덧 여명이었다 내내 독작이었다
문신 시인 / 불꽃인데
몸에 호랑이 문신을 한 형에게 돈을 빼앗겼다
그날 밤 나는 팔뚝에 용을 그렸다 빨간 볼펜으로 용의 입에 불꽃도 그렸다 갑자기 팔이 튼튼해져서 호랑이쯤이야 가뜬히 때려잡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침에 세수를 하다가 양치하러 들어온 엄마에게 문신을 들키고 말았다
-아유 깜작이야, 팔뚝에 뱀을 왜 그려?
엄마가 때수건으로 내 팔뚝을 불꽃을 뿜는 용을 박박 문질렀다
뱀 아니고 용인데...... 내 말에 엄마가 불꽃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뱀 혓바닥이잖아!
(불꽃인데..... 불꽃인데......)
엄마가 뱀 혓바닥을 박박 문지르더니 물 한 바가지를 꽉 부었다
피시식 불꽃이 꺼져 버리며 내 팔뚝에서 힘이 쭈욱 빠져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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