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성 시인 / 신춘법어(新春法語)
참새 두 마리 머리 맞대고 포륵포륵
봄볕 밝은 마당 짝 찾기 놀이 즐겁다
검은 흙 들추고 얼굴 내민 씀바귀
지난겨울 추위 따위 돌아보지 않는다
홍사성 시인 / 수처작주(隨處作主)
월요일 밤마다 보는 가요무대
몇 십 년째 진행하는 사회자 호명하면 나와서 노래하는 가수 뒤에서 춤추는 백댄서 옆에서 코러스 넣는 합창단 박자 맞춰주는 오케스트라 흥겨운 연주에 박수치는 방청객 즐겁게 해주려고 머리 싸맨 연출자 의도대로 편안하게 시청하는 사람들
다 잘났다
홍사성 시인 / 만법귀일(萬法歸一)
오늘도 해질 때까지 당신만 참구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꽃은 당신의 얼굴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는 당신의 노래 코에 스치는 모든 냄새는 당신의 향기 혀끝에 맴도는 모든 미각은 당신의 맛 몸이 알아채는 모든 느낌은 당신의 감촉 가슴 뛰는 모든 상념은 당신에 대한 생각
나의 기승전결은 당신 당신 없으면 나는 돌아갈 데가 없습니다
나는 종일 당신을 화두로 품고 사는 백납운수(百衲雲水)입니다
홍사성 시인 / 좌단설두(坐斷舌頭)
지난 연말 절에 갔더니 이런 걸 물었다
만원버스 타고 가다 자리 양보해준 적 있는가 비탈길 올라가는 폐지리어카 밀어준 적 있는가 아프리카 배고픈 어린이 위해 후원금낸 적 있는가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비닐봉지 치워본 적 있는가 피 모자란다는 말 듣고 헌혈하러간 적 있는가 음식에 들어간 머리카락보고 모른 척해준 적 있는가 더 받은 거스름돈 돌려주려고 되돌아간 적 있는가 헌종이 모아서 이면지로 사용한 적 있는가 순직한 소방관 장례식 보다가 코풀어본 적 있는가 학창시 절 가르쳐준 선생님에게 안부전화한 적 있는가
할 말이 마땅치 않아 끙끙대기만 했다
홍사성 시인 / 본지풍광(本地風光)
태국 남부 차이야 지방 해탈정사 선방 문 앞 작은 해골 하나
‘1930년 미스 타일랜드’
수도승들은 하루에 몇 번씩 친절한 설명문대로 절색이었던 해골을 본다, 봐야 한다
산 해골이 죽은 해골을 보면 죽은 해골은 산 해골에게 뭐라 할까
죽으면 시시하지 않은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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