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연 시인(천안) / 버찌가 익을 무렵
고요할수록 깊어지는 것이 있다
오월의 햇살 아래 깊어짐으로 오히려 아련한 기억을 불러내는 것들
잊혀졌다고 여긴 것은 잠시다
햇살 촘촘히 새긴 잎 사이로 가장 낮고 무거운 빛을 쏟아내는 것들
해묵은 침묵을 견디지 못해 맨발 훌훌 털고 아낙의 눈 속을 파고든다
봄빛은 고향이 어디냐고 묻지 않는다
김다연 시인(천안) / 저 혼자 머무는 풍경
역은 언제나 그 곳에 있었다
오고가는 이들의 발길 뜸해졌거나 머물던 사람들 떠나갔어도 햇빛 맑으면 맑은 대로 비바람 몰아치면 몰아치는 대로 산으로 강으로 꽃으로 나무로 허물어지는 지붕의 그림자를 지우며 혈육 같은 개망초꽃들 피우고 또 피웠다
간혹 길을 잃은 노루나 고양이가 찾아와 살아가는 일의 고단함을 풀어놓기도 했지만 순간의 머무름이 가져다주는 위안이란 닿을 수 없는 한 시절의 기억일 뿐 텅 빈 역사의 적막함만이 저 혼자 머무는 풍경이 된 양원역엔 깃들 것 없는 하루 내내 노을이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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