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엽 시인 / 수국은 헛꽃을 피웠네
수국이 헛꽃을 피운 것은 참꽃 때문이었네 암술 수술 총총 박힌 꽃무리가 너무도 작아 벌 나비가 찾지 못할까 봐 보이지 않을까 봐 언덕배기 바람 많은 그곳에 서서 꽃잎 하나하나 다정하게 보듬어 안고 바다를 보면 파란 물을 들이고 노을을 보면 빨강 물을 들이고 탐스러운 헛꽃 송이들 하늘 아래 활짝 펼쳐 놓은 채 오가는 이 눈 코 입 멈춰 세우며 참꽃 열매 뭇별처럼 알알이 영글어가도록 기다려 주었네 흰 등줄기 야위어 삭아질 때까지 지키고 있었네
제자리에 서 있으려는 몸부림이 그저 삶이었네 비워내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실천이었네
장이엽 시인 / 어떤 후유증에 대한 기대
시인들의 모임을 다녀온 다음에는 아프다 시를 잘 쓰는 사람도 보고 시를 못 쓰는 사람도 보고 시를 읽는 사람을 만나고 시를 보는 사람도 만나고 사람을 보는 시인도 있고 시인을 보는 시인도 있고 한쪽에서는 품위를 지키고 한쪽에서는 스크랩이 이뤄지고 그래서 목소리가 커지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목소리가 작아지는 사람도 있고 끝까지 앉아 있는 사람이 있고 일찌감치 자리를 뜨는 사람도 있고, 그럼에도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있고 그럼에도 사교를 잘하는 사람이 있고 그러든지 말든지 시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시를 쓰는 시인을 만나고 사람을 위로하는 사람을 만나고
이번에는 박수라도 쳐야지 신나게 웃어봐야지 거 웃기는 것도 재주지만 배꼽 빠지게 웃어제끼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지 기 살려 주는 재주 지난번 모임 후에는 목이 아팠는데 이번에는 어떤 증상이 나타나려나 정말 기대된다
- 시집 『삐뚤어질 테다』, 지혜,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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