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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형주 시인 / 남편을 낳다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27.

신형주 시인 / 남편을 낳다

 

 

며칠 동안 집에 와 계시는 시어머니

손주한테서 눈을 못 뗀다

쟤는 어쩜 하는 짓이 제 아비를 빼다 박았냐

태어날 때부터 붕어빵이더니 자랄수록 똑 닮아가네

시금치, 오니 싫어하고 사골국 좋아하고

깔끔 떨고

잔소리하면 눈 치켜뜨고

새끼발가락 휜 거 하고 어쩜 어쩜

어이구 내 새끼야 감탄사 날리시며 입꼬리 올라가는 시어머니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외친다

어머니 내 새끼거든요

어쩌나

난 이제까지 남편을 낳아서 키웠나보다

 

 


 

 

신형주 시인 / 히레사케

 

 

눈발 날리는 오후 다섯 시 버스 정류장

지갑에서 명함 꺼낼 때 슬픔 한 장도 같이 툭,

떨어지는 사내라면 먼저 다가가서 말 걸어보고 싶네

 

감히 실례하고 싶네

 

히레사케 한 잔 마시자 청하겠네

 

내 슬픔의 지느러미 몰래 그에게만 보여주고 싶네

겨울밤 한가운데를 유영하며

우리는 밤늦도록 슬픔을 권한 것이네

서로의 아픔에게 맞절하고

맞담배 피우며 슬픔의 연기 나눠 마시겠네

 

심해 심해 밑바닥에 두툴두툴 솟아 있는 상처들을 위해 건배하겠네

새벽이 오는 것도 모르는 채

 

시작(2017년 가을호)

 

 


 

 

신형주 시인 /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면

 

 

살림을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남편 잔소리 화살처럼 날아와 등 뒤에 꽂힌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말이야

잔뜩 사다놓고 싹이 날 때까지

어라 잎사귀도 생겼네

뭐하고 돌아다니길래

한마디 대꾸도 안 하고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서 버리고 왔다

당신 오늘 독을 건드렸어

들어오자마자 방문 걸어 닫고

침대에 누워 신문 보는 남편에게 쏘아붙였다

감자에 싹이 난 것만 보이고

마누라 마음에 독이 자라서 줄기가 무성한 건 안보이냐

당신 이제 독안에 든 쥐야

 


 

신형주 시인

경기도 수원 출생. 수원여대 간호과 졸업. 2010년 계간 시에등단.2017년 시집 젬피출간.2010년 마로니에 백일장 우수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