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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임덕기 시인 / 향유 고래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26.

임덕기 시인 / 향유 고래

 

 

알래스카 근처 베링해에는

덩치 큰 시인들이 모여 산다

 

알레그로 속도로 부는 바람 따라 자맥질하며

향기로운 내음을 가슴에 품고

물의 중심에서 떠돌며 이리저리 헤맨다

 

마음이 허기지면 멀리 떨어진 동료에게

낮은 소리로 말을 건네고

이따금 숨비소리로

주위에 제 존재를 알린다

 

선조들이 뭍의 야수를 피해 찾아 들었던 바다

 

물의 가시가 가슴을 찌르는 날에는

해변에 올라와 물을 거부하며

떠나온 육지를 그리워한다

 

눈앞에 아슴아슴 떠오르는 푸른 풀밭

그 위를 천천히 걸어가는 꿈을 꾼다

 

 


 

 

임덕기 시인 / , 무대에 서다

 

 

봄 무대 커튼을 활짝 열어 제친다

산수유, 매화가 까치발로 들어온다

 

개나리 우중충한 무대 배경에

강렬한 노랑을 덧칠한다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목련

깜짝 초대장을 여기저기 뿌리며 하얗게 웃는다

 

자지러지게 웃던 벚꽃

엊저녁 내린 봄비에

풀이 죽어 시무룩한 낯빛이다

 

, 개망초가 도착하기 전에

냉이, 제비꽃, 꽃다지가 종종걸음으로 들어온다

 

무대 위에는 봄을 위한 연출이 막 시작된다

 

-임덕기 시집, <, 무대에 서다>에서

 


 

임덕기 시인

경북 포항출생,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2014년 계간 애지신인상으로 등단. 수필시대』 『에세이문학추천완료. 시집 꼰드랍다수필집 조각보를 꿈꾸다, 기우뚱한 나무들(2015년 세종나눔) 우수도서. , 무대에 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