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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허은희 시인 / 선택적 함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28.

허은희 시인 / 선택적 함구

 

 

검은 복면

검은 장갑

검은 눈동자

 

숨을

벗는 시간

몸에 두른 주름의 움직임

 

소리를 깨우는 건 반칙이야

유리조각을 밟지 마

오역에 기운 가지를 흔들지 마

환생은 없고 환각만 있음을 기억해

 

입 다문 창문

귀 잘린 의자

얼굴 없는 바닥

 

몸을 두른 금기가

투명해지는

빈방

 

 


 

 

허은희 시인 /

 

 

넓이

어딘가에 당신과 닿으려다 놓친 곳

 

눈꺼풀 밖으로 출발한 막차와

하루를 밀봉하고 가는 셔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으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재생 불가한 어제의 햇빛 너머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단서들

 

맞은편의 바람이 흔들고 가는

나무의 무수한 발자국들

 

숲이 되고도 남았을

당신 등 뒤를 서성이다 쌓인 발자국, 먼지들의 국가

 

그러므로

, 형용할 수 없으므로 무구하고

구원의 바깥을 돌아 첫 차가 올 동안의

 

거리, 우린 날이 밝는 속도로 조금씩 기울고 있다.

 

-20191010() 중부일보

 


 

허은희 시인

1966년 인천에서 출생.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2003년 격월간 시사사로 등단. 시집 열한 번째 밤(한국문연, 2016)이 있음. 28회 인천문학상 수상. 3회 시사사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