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송진 시인 / 로제타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29.

송진 시인 / 로제타

 

 

치어를 살려주는 로제타

숭어를 먹지 못하는 로제타

우물 같은 배꼽을 지나가는 헤어드라이기

차가운 물속에 잠긴 한 알의 계란

무거운 가스통은 로제타 휴대 물통을 닮았어

로제타 물통은 배꼽을 닮았지

엄마의 젖꼭지를 닮았지

무언가 호스 같은 줄이

탯줄 같은 줄이 연결이 되어있어

물고기처럼 연분홍 아가미로 숨을 쉬어

LPG 가스처럼 연초록으로 타올라

누군가의 등에 기대어 낡은 소음의 오토바이를 타고

박자 틀린 드럼 소리에 맞춰 어색한 첫 춤을 추고

나는 혼자가 아냐

나는 친구가 생겼어

나는 평범한 삶을 살 거야

나는 버터에 잘 구워진 토스트에 설탕을 바르고

친구와 함께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마실 거야

그렇게 살 거야

그렇게 살 거야

나는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을 거야

잘 자

잘 자

, 로제타

, 로제타**

 

* 영화 로제타(Rosetta)’를 시()로 재구성함. 장 피에르 다르젠, 뤽 다르젠 감독

** 로제타의 독백

 

 


 

 

송진 시인 / 소쉬르를 사랑하다

 

 

 그가 소쉬르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오 년 전 여름 723일 대서大暑 뙤약볕 아래 동료들과 맨홀 공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잠이 들었는데 꿈에 키우던 개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나타나 대가리를 그의 입안에 들이박고 목젖을 뜯어 먹는 것이었다 그는 소리를 지르고 발버둥을 쳤지만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고 곧 축 늘어져 시체가 되는 꿈이었다 꿈에서 깬 그의 이마는 땀투성이였다 피를 보고 시체를 보았으니 길조 쪽으로 마음을 돌리려고 애썼지만 마음 구석 한가운데는 별안간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듯했다 휴대폰이 울렸다 박 군이라고 떴다 박 군은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데려온 고아다 동네 사람들은 아버지 아들이라고 수군거렸다 여보세요? 그런데 그의 목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여보세요? 목소리를 잃은 사람이 된 사실이 점점 명확해져 갈 무렵 비가 내리고 닭들이 무더기로 푸른 트럭에 목소리가 실린 채 사라졌다 그가 자신의 목을 자신의 손등에 등나무처럼 휘어 감고 소쉬르의 집을 찾아갔을 때 소쉬르의 서랍 속에는 메모가 한 장 달랑 놓여 있었다 '어서 목소리를 찾아 나에게 오게'

 

-시집 <방금 육체를 마친 얼굴처럼>(걷는 사람, 2022)

 

 


 

송진 시인

1962년 부산에서 출생. 1999다층1회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지옥에 다녀오다, 나만 몰랐나봐,시체 분류법,미장센, 복숭앗빛 복숭아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