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장수철 시인 / 귀에게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29.

장수철 시인 / 귀에게

 

 

그러므로 귀는 내가 한참 간지러운 것이다

미안하다,

땅 속 괴근처럼 비대해진

의식과잉의 귓밥을 달고 다니는 귀에게

시종 부기가 빠지지 않는 슬픔을 매단 귀에게

한 실패한 혁명가가 젊은 시절 몰고 다니던

고물 오토바이의 사이드카처럼

작고 귀엽고

그러나 늘 텅 빈 귀에게

내 구부정한 오독의 목소리를 제법 알아듣는

늙은 귀에게

구불구불 협곡 속에 내 부끄러운 가족력을 숨겨준 귀에게

혹한 위를 떠도는 새떼들의 차가운 울음소리를 삼키는 귀에게

구순구개열처럼 찢어진

별들의 신음을 알아듣는 귀에게

입 마냥 소리내어 울지 않는 귀에게

 

다만 듣는 귀에게

 

 


 

 

장수철 시인 / A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설비쟁이 아버지는 늘 귓방망이를 날렸다네

포수 글러브만해진 아버지의 손바닥은

홈으로 들어오는 상대편 주자에게 악의적인 태그를 날리듯

연식구처럼 부드럽게 살이 오른 내 슬픈 청춘의 뺨때기를 찍어댔다네

반지하 사글세방 내리막 계단에 앉아

골프채로 맞는다던 친구 녀석을 생각하며

골프채로 맞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우우

이빨의 강박을 온몸에 각인하는 껌처럼 질겅질겅

인생을 음유하기 시작했다네

빨랫줄에 매달려 있던 아버지의 러닝셔츠가

바람에 날려 어깨 위로 떨어졌다네

후줄근히 늘어난 러닝셔츠의 어깨끈 앞에서

맞을 때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흘렀다네

늘어진 러닝셔츠의 어깨끈을 튕기며

애초부터 조율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생의 불안한 코드에 맞춰 질겅질겅

목가풍으로 노래하기 시작했다네

삶아도 지워지지 않던 러닝셔츠의 누런 복때처럼

나는

---

 

*비틀즈(The Beatles)의 노래 제목

 

 


 

장수철 시인

한양대학교 국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국문과 졸업. 2009년 월간우리시로 등단. 현재 대광중학교 재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