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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유진 시인 / 원초적 본능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1.

유진 시인 / 원초적 본능

 

 

이른 새벽 새파랗게 어린고양이가 담위에 엉거주춤 앉아

나를 살핀다

 

현관문을 열려다 엉거주춤

나는 고양이를 살핀다

 

배운 일 없고 가르쳐준 일 없이도

이미 알고 있는 길,

그 길을 더듬고 있다

 

잠깐의 경계도 놓칠 수 없는 긴장과 모자람의 여백 안에

두근두근 살고 싶어지는

 

 


 

 

유진 시인 / 동백 그늘

 

 

그녀에게 덤적 손잡힌 곳은 향일암 돌계단이었다

 

단 한 번 제자의 속울음이 내 자취방을 밤새 적시고

졸업장 찢어버린 열아홉을 소금에 절이고

산부인과를 나오며 그 의붓아버지를 수백 번 죽이고

짜디짠 젓갈에 고춧가루 범벅인 가슴을 함께 비볐던

 

붉은 물 떨어지던 은닉은

단단한 몇 겹으로 재포장 되었다

 

잎자루 없는 줄기를 감싸지도 않고 주름진 양면 잎 잘 키운 갓처럼 서늘한 바닷바람에 행궈가며,

일찌감치 사는 법을 터득한 깊은 눈

 

동백 꽃그늘을 매달고 한달음에 달려왔을

아삭아삭 맵고 달큰한 돌산 갓김치

 

갈맷빛과 숨비소리, 향일암의 일출과 돌산대교의 일몰까지

빠트리지 않고 버무려 넣었을 테지

 

 


 

유진 시인

부산에서 출생. 호는 청우(晴羽). 신라대학교 음악대학 관현학과 졸업. 2003년 월간조선문학으로 시와 수필 등단. 시집으로 참선일지』 『가버리는 것들과 떠나야하는 것들등이 있음. 조선시문학상, 국제문예교류협회상, 포항문화예술인상. , 선린대학교 평생교육원 문예창작 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