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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은심 시인 / 씨, 질감의 기억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1.

이은심 시인 / , 질감의 기억

 

 

평생이 떨어지는 연습이다 멍이 들면 틀린 것이다

 

열의 아홉까지 차오른 마음이 바투 잡은 손잡이를 단숨에 밀고 들어왔을 때 씨는 처음으로 저를 돌려 깎는 과도를 본 것인데 경우 바르게 그때 뱉어낸 씨를 발목 좌우에 묻었다고

 

몰아치는 빗발에 꼭지가 도는 저녁 여덟 시도 멍이 들면 다 들린 일이다 봄에 씌워두었던 봉지를 벗기기 시작한 건 뉴스의 내용이 생각나지 않아서였다

 

각자의 방에서 숙성되기를 기다리는

통째 아삭한 연애의, 죄를 내가 다 받을 것이다

 

설익은 뺨을 덥석 베어 무는 설레임은 두 사람이면 꽉 차고 휘파람을 불어넣는 대로 대화에 침이 고인다 첫 마음의 솜털을 밀고 정수리에서 무려 분홍까지

 

딱 한켜 부족한 향기 때문에 던지면 광주리 밖으로 떨어지는 빠듯한 풋것

 

몇 번을 구를지 바람 속의 일을 그도 모르고 나도 몰랐을 뿐이다

 

내가 키웠다고 다 내 것은 아니다 트럭이 오면 박스는 연장자순으로 사라질 것

 

털끝도 건드리지 못한 중심은 또 백일하에 드러나

씨로서 부디

 

, 하고 다문 입술로 기쁘시게

, 하고 멀리 보내는 숨결로 당당하시게

 

- <아프게 읽지 못했으니 문맹입니다> (상상인, 2021)

 

 


 

 

이은심 시인 / ,사람은 잘 받았습니다

 

 

보내주신 눈,사람은 잘 있습니다

 

인간의 높이를 버리고 수없이 승천을 꿈꾸던 그날의 가방이 하나 낡고 휑한 중심은 휘저어도 전날의 몸이 없습니다

 

기대하다 작아져버린 비망록 그리고 에미 보아라 펼쳐본 이면에서 동그랗게 울고 있는 눈물냄새

 

다만 넘실거리며 以後가 마중 나옵니다 어느 해 빈집엔 날개 돋친 초록뱀이 똬리를 틀고 부지중의 휘파람에서 일요일의 창문이 쏟아집니다 사적인 것은 극적인 것

 

십 년째 고쳐 매는 이승의 끈 떨어진 관계를 틈날 때마다 잊어도 내년처럼 또 오실 거죠 세상에 하나뿐인 마음은 힘이 있어서 잠도 안 자고 중인 자귀나무 한 그루

 

떠나는 건 당신인데 내가 배웅받는 느낌

철없이 푸른 결핍을 만져보면 안개만 몰려와 저기 주인을 놓친 가방이 있습니다

 

그날의 날씨와 여기 살지 않는 근조화환을 도로 넣고 나는 가까스로 빈손을 꺼냈습니다, 아버지

 

 


 

이은심(李恩心) 시인

1950년 대전 출생. 한남대학교 영어영문과 졸업. 1995대전일보신춘문예 당선되어 등단. 2003시와 시학신인상 수상. 시집으로 오얏나무 아버지(한국문연, 2004), 바닥의 권력(황금알, 2017)이 있음. 2017년 대전문화재단 문학창작기금수혜. 2019년 대전일보문학상 수상. 2019년 한남문학상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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