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전영아 시인 / 죽음의 냄새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1.

[38회 방송대문학상 당선작]

전영아 시인 / 죽음의 냄새

 

 

엄마는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계시다 가셨다

 

집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코를 싸쥐고

지나가며 우리 집에서 생선 썩는 냄새가 난다고 했다.

너무나 가까운 일상이어서 나는 그 냄새를 전혀 구분하지 못했다

엄마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젊디젊은 나이에 방바닥을 짊어지고 있으라는 형벌을 받으신 걸까

내장이 서로 다 통해버려 끊임없이 밑으로 오물이 흘러나왔다

몸은 말할 수 없이 망가졌어도 정신만은 초롱같아서

자리 밑에 비닐을 덧씌우고 당신 손수 기저귀를 갈아 받치면서도

한 번도 내게 몸을 보이지 않으셨던

엄마

 

유방과 자궁이 온전해야 여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딸은 엄마의 유전자를 빼닮는다는데

엄마가 겪은 그런 고통은 결코 겪지 않으려고

조그만 근종 하나에 나는 지레 겁을 먹고 여자를 버리고 말았다

저승은 몸이 망가져야만 갈 수 있는 곳일까

 

어젯밤 꿈엔

담벼락에 기대서서 엄마를 기다리며 웅크리고 섰던 어린 내가

저만치서 다라이를 이고 오는 엄마를 보고 쪼르르 달려가고

삼랑진 오일장 초라한 생선장수 좌판에서 허옇게 소금에 절여진 엄마를 만났다

뒤죽박죽 정리되지 않은 꿈에서 깨어난 아침

냉장고에서

사다 놓은 지 한참 지나 살이 물러 물컹거리며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생선 한 토막을 발견했다

삼십 년 전에 엄마에게서 났던 그 냄새를 만났다

지독한 냄새는 길잡이인양 죽음을 데려왔다

 

 


 

 

전영아 시인 / 책 읽는 여자*

 

 

얼마나 오랫동안 이러고 있었는지 알 수 없네

허리가 뻐근한 걸 보니 수백만 시간이 지났을 것만 같네

곧 오겠다며 책이나 좀 읽고 있으라던 James는 여태 소식 없네

그가 오기까지 나는 여기를 떠날 수 없네

카페 주인도 내 사정을 아는지 자리를 비우라지는 않네

어쩌면 버림받았을지도 모르는 내가 가여운지

사람들은 이제 돈까지 내고 와서는 나를 보고 가네

차려진 테이블 위엔 싸늘히 식어 가는 커피포트

붉은 꽃도 James를 기다리며 몇 번을 피었다 시들어갔는지 생기를

잃어가네

우리가 탈 배가 곧 떠날 것만 같은데

창밖에는 바람이 불고 구름이 흩어지고 사계절이 다녀가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책을 읽는지 아무도 묻지 않네

그를 기다리는 동안 온갖 서적을 읽은 나는

시방 위험한 여자

 

*James Jacques Joseph Tissot, Room Overlooking the Harbour(private)-1878

 

 


 

 

전영아 시인 / 신화를 쓰다

 

 

얼마 전 달을 분양한다는 광고가 크게 났다

이러다간 끝내 달빛 구경도 못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달빛 한 올 분양 받으려면

몇 생을 기다려야 할 그런 역사가 올지도 모른다

 

팔월 한가위 둥근 보름달이 떴다

저것은 날마다 모습을 바꾸며 나타나는 별

먼 먼 내 전생의 조상은

숲을 헤매는 유랑의 삶에 지쳤던 곰이었다던가 뭐라던가

겹겹이 무량한 어둠의 터널 아래

태백산 신단수 가지 끝에 매달린 은하의 물길 따라

달이 뜨고 이우는 백일 동안 코를 막고 먹었던 쑥과 마늘

뼛속까지 여인이 되길 염원하고 끝내 원을 이루었다던가 뭐라던가

은사 댕기 같은 은빛의 달은 뜨고 지고 뜨고 질 때마다

달이 지나는 굴곡진 능선엔 희고 환한 달꽃이 피어났을 것이다

 

지금 나는 껍데기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는

늘 정신이 혼미한 채 아직 온전한 인간이 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도 몇 단의 쑥과 몇 접의 마늘을

얼마나 더 많이 먹어야 온전한 인간이 되나

 

잃어버린 내 종족은 언제 저 달을 분양받아 이사를 하였는지

달 속에서 앞발을 들고 비손하는 웅녀가 보인다

 

-시인정신 2017 여름호

 

 


 

전영아 시인

1970년 경남 밀양 삼랑진 출생. 2012년 한국방송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4년 제38회 방송대문학상 시 당선. 2015년 제35회 계명문화상 시 가작 당선. 2016년 제22동양일보신인문학상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