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외자 시인 / 서리꽃 주소 당신은 달맞이꽃 꽃잎 뒤에 편지를 써서 바람의 갈피에 끼워놓았다고 했었지요 꽃잎은 부서지고 바람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단단한 집을 한 번 지어볼까요 움직이는 것들에게는 주소가 없습니다 굳이 말하라고 하면 앉고 싶어도 앉을 자리가 없는 막막한 자유라고나 할까요 내 주소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붉은 퉁퉁마디가 자라는 갈밭 11월 29일,아침 6시30분과 6시40분 사이 갈 이파리 끝마다 오소소 돋아난 서리꽃으로 나를 잠시 꽂아둡니다 검은 편지지 같은 철새 때들이 가물가물 날아다닙니다 흰 꽃잎이 지기 전에 당신의 편지는 당도하기를, 이만 총총 천외자 시인 / 잠 우산을 펼쳐놓고 들판에서 잠시 깊은 잠을 잤던 적이 있다 쥐똥나무에는 펑펑 비 잠들기에는 빗방울을 막아주는 이런 우산집도 괜찮다 천지갑산 강변 물뱀이 숨어든 너럭바위 위에서 단 잠을 잤던 적이 있다 벽도 천정도 만들지 않았지만 햇살에 데워진 바위가 따뜻했다 잠들기에는 이런 바위집도 괜찮다 몸을 웅크리면 더 작은 우산 아래서도 잠은 젖지 않는다 더 작은 돌 위에 잠을 펼쳐도 바닥으로 흘러내리지 않는다 바싹 마른 꽃잎들은 바람위에 누워서도 깊은 잠을 잔다 깃털처럼 가벼웠다고, 그러나 더 버릴 것이 있다 가벼워질수록 잠들 곳은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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