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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심지아 시인 / 정물화 도둑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30.

심지아 시인 / 정물화 도둑

 

 

봉제선은 말끔할 때조차 기괴하다.

이브의 매끄러운 옆구리에서 사과가 쏟아진다.

 

떨어지는 순간, 사과는

사과를 뱉어내는 사과처럼

뱀이 된다.

 

뒤죽박죽이야 세계는.

붓으로 뱀을 그리는 어린 세잔의 이목구비는 아직

가지런하다.

 

캔버스 위에 붙였다 떼었다 한다.

한 개 혹은 여러 개의 사과로 질문인 얼굴을 완성할 수 있어?

사과 꼭지를 도려내는 칼끝처럼 날카로운 모서리들

 

나의 밤은 머리가 많은 뱀처럼 베개가 부족해.

불행을 조제하는 테이블에서

알약들의 테두리를 애무하며

밤의 넓은 목구멍을 바라본다.

 

베어 문 사과처럼

손등만이 남아 있는 시간

 

사과의 반쪽은 사과가 도달한 옆얼굴인가.

부족한 손등은 시간의 완전한 테두리인가.

 

절반의 사과는 보다 짙은 냄새

한 개는 부족하고 반쪽은 충분해.

못된 쌍둥이처럼

 

이상하다고 되뇌게 되는 물체

목소리처럼 이빨자국이 찍힌다.

 

점점 좁아지는 사각형 위에 팔을 괴고

얼굴을 모은다,

떨어트리기 좋게

 

혀는 입안에 젖은 융단처럼 깔려 있다.

이빨은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탁자 위에는 파이기 쉬운 사과 한 알

알겠다는 듯

모르겠는 얼굴로

아이가 남겨둔 것

 

 


 

 

심지아 시인 / 모든 침대는 일인용이다

 

 

창백한 밤이야 목조 프레임이 흔들렸다 기억하지 못할 이야기를 사랑하느라 잠드는 사람들 여러 번 깜빡이는 형광등처럼 우리의 내부는 밤새 어둡게 번쩍인다 환한 정전이거나 검은 불빛이거나

 

수평으로 누워 바라보는 세계는 어쩐지 내가 사라진 곳에서 펼쳐진 풍경 같아 서늘하고 담담한 간격으로 우리는 낯설어지고 우리는 아늑해진다 점점 커지는 시계소리 그것을 심장이라 믿으며

 

새벽 무렵 눈을 뜨면 잠긴 건물들 사소하고 쓸쓸해 지평선은 사라지면서 나타나고 우리는 걷는다 마땅한 인사를 건네지만 우리가 말아 쥐고 있는 것은 목화솜 이불, 기억나지 않는 이야기는 유일하게 싫증나지 않아

 

 


 

심지아 시인

1978년 전북 익산에서 출생. 2010세계의 문학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로라와 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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