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희 시인 / 모닥불 아무도 혼자서는 불탈 수 없네 기둥이었거나 서까래, 지친 몸 받아 달래 준 의자 비바람 속에 유기되고 발길에 채이다 온 못질투성이, 헌 몸일지라도 주검이 뚜껑 내리친 결빙 등판에서도 불탈 수 있네 바닥을 다 바쳐 춤출 수 있네 목 아래 감금된 생애의 짐승울음도 너울너울 서로 포개고 안으면 안영희 시인 / 숯불 우리는 왜 온전히 타지 못했을까 컥컥 숨차고 목이 아파 울었을 뿐 아무리 애 태워도 매운 연기만 피어올랐다 그때는, 무엇이 되기엔 너무 이른 준비 없는 열정, 생나무 가지들이었을까 햇빛과 바람의 거리 알 수 없는 눈보라의 골짜기 천만 개 밤을 헤매느라 그 피 삭고 물기 다 말려 꽃처럼 아름답게, 꽃보다 처절하게 불로 피어나는 몸 안영희 시인 / 카드를 대세요 날 허락한 용문 행 기차 푸른 들판을 질러 덕촌2리 마을회관 앞까지 날 실어다 준 중원리 행 버스는 내 카드의 밥을 움푹 우움푹 덜어 먹는다 충전기에 카드를 넣으면 충전할 금액을 클릭하세요, 그러나 날 세상에다 내놓을 때 당신이 내게 충전한 금액이 얼마인지 나는 읽을 수 없고, 내 생의 잔량이 얼마큼인지 나는 가늠할 길 없으므로 살구꽃벚꽃매화꽃… 충전 탱탱한 생명들 꿈속처럼 천지간에 꽃잎 날릴 때에 혹은, 어느 깜깜한 밤 어느 낯선 비바람의 거리에 예비도 없이 나는 폐기될 것이다 빈껍데기가 되어 <사용법> 재충전 불가, 재생 불가함. 인 내 목숨은 한 장, 새로 발급하면 그만인 당신의 낱장 카드일 뿐이니까 안영희 시인 / 찔레 누가 지등紙燈을 걸고 있니 불 꺼진 기인 회랑에 누가 질주하다 넘어져 운 불과 바람의 사계 돌아봐, 돌아봐 하는 거니 부재인 듯 종일토록 머릴 박은 노동의 손을 씻으며 시나브로 지워지고 있는 이 저녁답 사람아, 나도 저 흰 꽃이고 싶다 가만한 향내 허기 지운 저 눈빛으로 문득 읽히고 싶구나 지친 귀로의 그대에게 안영희 시인 / 철새 새벽 산길을 가네 덜 떨친 잠과 더께 진 미혹의 유리창, 내 영혼 햇푸성귀 잎사귄 양 헹궈 올리며 샘물 찰박대던 새소리들 들리지 않네 나무들 울울창창하던 때 새들의 시간, 하고 내가 이름 불렀던 바로 그 시간대인데 없네, 지금 저 숲에는 그 이쁜 새들의 기척이라곤 없네 아 단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네 그대 떠나가 버린 빈숲, 우리가 그 누구의 생애에도 지, 나 가 는 철새임을 알지 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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