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 시인 / 한가로운 날 그제는 혼례식에 참석했고 어제는 장례식에 다녀왔다 오늘은 아직 일이 없으니 몇 줄의 글을 읽으며 빈둥거려도 된다 내 자리가 높지 않아 찾아오는 이 없고 내 가진 것 많지 않아 욕심내는 이 없고 각별히 사랑하는 이 없으니 시새움 걱정 없고 지나치게 미워하는 이 없으니 원망에도 자유롭다 아침엔 세 평의 채소밭에 나가 물을 주고 낮에는 뜰의 풋고추, 씀바귀 잎을 따다 향긋한 된장에 찍어 물 만 밥을 씹는다 저녁엔 잘 익은 매실주 둬 잔이 기다리고... 늙은 소나무엔 아침저녁 까치들이 드나들고 감나무 매화나무엔 종일 참새들이 드나들고 호박덩굴엔 호박벌, 능소화엔 개미 떼들 찾아오는 사람은 없어도 온종일 손님들로 북적댄다 세상에 지천인 이 평화를 나누어 가질 사람이 없어 민망하다. - 임보 잠언시집< 山上問答 > 2016 임보 시인 / 신 청산별곡 청산은 나를 보고 무겁게 살라 하고 유수는 나를 보고 가볍게 살라 하네 청산과 유수를 보며 어이 살 줄 몰라라 청산은 나를 두고 쉬었다 가라 하고 유수는 나를 두고 서둘러 가라 하네 청산도 유수도 두고 내 맘대로 하리라 임보 시인 / 비 오는 날 비여, 내려라 많이많이 내려라 인간의 악한 마음 말끔히 씻어내고 지상의 병든 장벽들 다 허물어 버려라 하늘도 우렁우렁 큰 울음 울더니 소나기 눈물 비를 홍건히 쏟는고야 덕분에 따라서 울기 괜찮은 날이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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