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희 시인 / 매화꽃이 필 무렵 저 탱탱한 젖꼭지 같은 꽃망울 겨우내 뜨거움 감추고 있었을 뿐이지 어둠 속에 묻어 둔 봄의 숨소리 이제 깨어나라는 봄바람의 속삭임에 꽃잎들 금새 확 피어나고 있다 저기 도톰한 꽃봉우리 보드랍게 부풀도록 햇살도 마시멜로처럼 늘어졌다 연한 꽃향기가 흐르는 봄밤, 차갑던 추얷이 거짖말처럼 잊혀지고 하얀 달빛도 고양이처럼 조심스레 걸어가고 있다 이가희 시인 / 젓갈골목은 나를 발효시킨다 강경상회 이씨는 짠 손바닥에다 새우를 키운다 멸치떼도 몰고 다닌다 헝클어진 비린내를 싣고 와 육거리 젓갈시장 골목 가득 풀어놓는다 날마다 그는 해협을 끌어다 소금에 절여 간간하게 숙성시킨다 그가 퍼 주는 액젓은 오래 발효시킨 수평선이다 그는 저울에다 젓갈의 무게를 재는 법이 없어 누구나 만나면 후덕하게 바다를 퍼 준다 저무는 수평선처럼 강경상회가 셔터를 내리면 골목에다 몸 풀었던 바다 갯내음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싱거웠던 내 몸, 어느새 짭짤하게 절인 젓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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