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이가희 시인 / 매화꽃이 필 무렵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2.

이가희 시인 / 매화꽃이 필 무렵

 

 

저 탱탱한 젖꼭지 같은 꽃망울

겨우내 뜨거움 감추고 있었을 뿐이지

어둠 속에 묻어 둔 봄의 숨소리

이제 깨어나라는 봄바람의 속삭임에

꽃잎들 금새 확 피어나고 있다

저기 도톰한 꽃봉우리 보드랍게 부풀도록

햇살도 마시멜로처럼 늘어졌다

연한 꽃향기가 흐르는 봄밤,

차갑던 추얷이 거짖말처럼 잊혀지고

하얀 달빛도 고양이처럼 조심스레 걸어가고 있다

 

 


 

 

이가희 시인 / 젓갈골목은 나를 발효시킨다

 

 

강경상회 이씨는

짠 손바닥에다 새우를 키운다

멸치떼도 몰고 다닌다

헝클어진 비린내를 싣고 와

육거리 젓갈시장 골목 가득 풀어놓는다

날마다 그는 해협을 끌어다

소금에 절여 간간하게 숙성시킨다

그가 퍼 주는 액젓은

오래 발효시킨 수평선이다

그는 저울에다

젓갈의 무게를 재는 법이 없어

누구나 만나면

후덕하게 바다를 퍼 준다

 

저무는 수평선처럼 강경상회가 셔터를 내리면

골목에다 몸 풀었던 바다 갯내음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싱거웠던 내 몸,

어느새 짭짤하게 절인

젓갈이 된다

 

 


 

이가희 시인

1962년 충북 보은 출생. 충남대학교, 고려대학교 대학원(문학석사)과 한남대학교대학원(문학박사)을 졸업. 2001'대전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등단했으며 시집 <나를 발효시킨다> <또 다른 골목길에 서다>와 저서 <한국토종엄마의 하버드 프로젝트> 등이 있다. 2020년 제16회 대일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