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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하해 시인 / 돼지국밥집 목련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3.

정하해 시인 / 돼지국밥집 목련

 

 

허름한 담을 딛고 올차게 다가오던 당신이라는 무렵

첫 봄은 거기서부터다

 

할머니가 끓여내는 동태탕을 먹으면서

담벼락 위로 좌정한 당신을 보는 순간은 내가 부풀었다

마당 절반을 드리운 나무가

해마다 당신을 여기로 데리고 오는 것이 생인 것처럼

 

할머니 또한 손맛을 먹이는 일이 생인 것처럼

구부린 등이 고봉인 것처럼

밥심이 후했다

할머니 돌아가시고

 

새로 온 주인은 푸성귀 같았다

푸성귀가 처음 하는 일

목련을 뜯어내고 돼지국밥, 간판을 다는 것

 

당신을 참수하는 일, 눈 깜짝하는 사이였다

봄은 헛디디며 왔다

 

그루터기에 앉아 당신이 당신을 찾을 즈음

돼지국밥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점점 푸성귀를 닮아 무성해져갔다

 

뚫린 봄을 메우는 건 참 쉽다

 

절실할 것도 없이 우겨넣는 입술이 점점

주둥이가 되어

발랄,

 

당신이 던져주고 간 내 안에 북채 한 잎

끓여도 국물이 나지 않는

아주 배고픈 것

 

월간 모던포엠202010월호 발표

 

 


 

 

정하해 시인 / 복숭아를 깨물며

 

 

저 뺨들이 나를 지나간 건지도 모른다

스무 살의 나이를 데려다

슬픈 부분들, 도려낸 자리에 복숭아를 심었다

그러니까 몇 생을 왕생한 것쯤의 고리로

우리는 서로를 기웃거렸기에 어쩌면,

타오르다 돌아서는 찰나를

시절이라 했다

한 번씩 살아본 생애가 늘 다른 색이듯

그렇다 첫 몸의 향기가

저렇게 남아, 입속에서 사랑하는 것이다

너를 지나왔던 것들이

우르르 떠나고

끝 간 데 없이 층층한 이 뺨들은

또 한 생을 섞느라 꽃은 언제나 피처럼 슬픈 색으로 온다

처음의 단맛을 기억하는 까마득한

몸이 있었음을 기리다

혀를 깨문다

붉은 피 몇 잎

왜곡되지 않은 그때 그 지문 같은

 

월간 대구문학20224월호 발표

 

 


 

정하해(鄭河海) 시인

1953년 포항에서 출생. 2003시안으로 등단. 시집으로 살꽃이 피다』 『깜빡』 『젖은 잎들을 내다버리는 시간』 『바닷가 오월이 있음. 2018년 대구시인협회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