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옥 시인 / 4월의 신전 고목도 꿈을 꾸는 계절입니다 가지를 전지해 놓은 플라타너스 길이 촛대의 행렬입니다 헤아릴 수 없는 메두사의 머리라도 잘라버린 것은 아닐까요 움켜쥘 손이 없는 빈 촛대에 머문 봄빛 불꽃을 당기고 있는 도심 속 가로수 길이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대 성전입니다 검은 불길 속에 갇힌 노트르담 대 성당을 무사히 빠져 나오셨나 봅니다 김찬옥 시인 / 별들이 모여 사는 마을 지호가 유치원에서 올 시간이다 가방을 받아들고 집 앞 편의점에 들려 마이쭈를 사고 새콤달콤한 얼굴로 아파트 정문을 들어섰다 마당에 핀 꽃들이 오늘 따라 유독 한가해 보인다 봄은 꽃들에게 먼저 왔건만 경비병보다 더 지루해진 오후, 한참 졸고 있을 꽃들에게 지호를 소개시켜 주기로 했다 “저 나무는 목련이라고 해, 꽃이 뭐 같아 보여?” “응 꽃잎이 하얀 날개 같으니까 백조 같아요” “그래 정말 백조 같네, 큰 소리로 말하면 백조 떼가 우르르 날아가 버릴지도 몰라" 지호는 살금살금 목련나무 아래로 걸어갔다 적막한 봄은 달아올라 모이를 쪼듯 연신 물어댄다 “저 건 벚나무인데 저 꽃은 뭐 같아?” “응 벚꽃나무 뒤에 하늘이 있으니 밤하늘 별자리 같아요, 별들이 함께 모여 사는 아름다운 마을이 나무에 걸려있네요” “응 정말 그러네, 지호의 눈은 진짜 상상님이 주셨나봐” 지나던 바람이 귀를 세우고 지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일까 백조 몇 마리 땅으로 내려앉아 날개 속에 부리를 감추자 지호의 머리 위에도 발등 위에도 낮 별들이 호호호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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