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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찬옥 시인 / 4월의 신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3.

김찬옥 시인 / 4월의 신전

 

 

고목도 꿈을 꾸는 계절입니다

 

가지를 전지해 놓은 플라타너스 길이 촛대의 행렬입니다

 

헤아릴 수 없는 메두사의 머리라도 잘라버린 것은 아닐까요

 

움켜쥘 손이 없는 빈 촛대에 머문 봄빛

 

불꽃을 당기고 있는 도심 속 가로수 길이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대 성전입니다

 

검은 불길 속에 갇힌 노트르담 대 성당을 무사히 빠져 나오셨나 봅니다

 

 


 

 

김찬옥 시인 / 별들이 모여 사는 마을

 

 

지호가 유치원에서 올 시간이다

가방을 받아들고 집 앞 편의점에 들려 마이쭈를 사고

새콤달콤한 얼굴로 아파트 정문을 들어섰다

마당에 핀 꽃들이 오늘 따라 유독 한가해 보인다

 

봄은 꽃들에게 먼저 왔건만 경비병보다 더 지루해진 오후,

한참 졸고 있을 꽃들에게 지호를 소개시켜 주기로 했다

 

저 나무는 목련이라고 해, 꽃이 뭐 같아 보여?”

응 꽃잎이 하얀 날개 같으니까 백조 같아요

 

그래 정말 백조 같네,

큰 소리로 말하면 백조 떼가 우르르 날아가 버릴지도 몰라"

지호는 살금살금 목련나무 아래로 걸어갔다

 

적막한 봄은 달아올라 모이를 쪼듯 연신 물어댄다

저 건 벚나무인데 저 꽃은 뭐 같아?”

 

응 벚꽃나무 뒤에 하늘이 있으니 밤하늘 별자리 같아요,

별들이 함께 모여 사는 아름다운 마을이 나무에 걸려있네요

 

응 정말 그러네, 지호의 눈은 진짜 상상님이 주셨나봐

지나던 바람이 귀를 세우고 지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일까

 

백조 몇 마리 땅으로 내려앉아 날개 속에 부리를 감추자

지호의 머리 위에도 발등 위에도 낮 별들이 호호호 쏟아져 내렸다

 

 


 

김찬옥 시인

1958년 전북 부안에서 출생. 1996현대시학을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가끔은 몸살을 앓고 싶다, 물의 지붕, 벚꽃 고양이와 수필집 사랑이라면 그만큼의 거리에서가 있음. 현재 <광명 사회체육센터유아스포츠단>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