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은 시인(대구) / 구름 난간에서 누가 흔들어댔던가_ 잠깐 사이 배경이 뒤집혔다, 순식간에 햇빛의 어금니 몇 개가 부러졌고 꽃들은 여백도 없이 사라졌다 그늘로 몸 바꾼 지평, 그리고 구름의 지문이 새겨진 허공 하늘은 스스로 내려 조용히 옷 벗고 바닷물 속으로 몸을 던졌다 뒷모습이 보여준 언어는 침묵이었으나 장면을 읽어내는 바람의 결귀 유추하건데 아귀가 맞지 않는 생生이란 평지와 구릉이 닿는 모서리, 사거리의 변 빛의 선, 어둠의 벽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이 순간 지구를 누군가 반으로 접었는지 한 귀가 잘린 창백한 낮달이 납작 엎드려 있다 남반구에 걸쳐진 가운은 다소 헐렁하다 풍랑을 따라 흔들리다 보면 수평선을 넘 듯 색色과 음音을 몰아오는 바람의 현絃, 그 음역으로 시간은 깊어간다 강성은 시인(대구) / 눈동자의 방 검은 눈동자의 방을 찾아든다 눈 감고도 익숙한 길이다 일찌감치 햇살을 살라먹고 입술을 훔친 달은 애꾸눈이다 차양 아래 눈꺼풀을 들추면 67.5° 만큼의 조리개가 열려 찰칵, 하고 눈인사를 건넨다 고여 있던 침묵이 발딱 일어났다 제자리를 찾는 동안 나는 커튼을 젖힌다 바깥 풍경이 오롯이 굴절되어 들어온다 맹점은 창 밖 흰 눈 속의 겨울눈이다 안개 속 미로를 달리는 차량들의 급브레이크에 놀란 별들의 눈동자가 휘둥그렇다 망막에 부딪힐 때마다 기억의 통로는 자꾸 좁아져서 소란스레 부풀던 한낮의 쟁점들이 제 무게를 잃고 부표처럼 떠다니다 소멸한다 하얗게 시력을 잃어가는 풍경, 풍경들…… 아랫목은 오목눈이다 어둠을 덧입고 내가 꿈속으로 다리를 뻗는다 꿈의 덫은 완강하다 발버둥치는 동안 또 다른 눈동자가 자꾸 생겨나서 이 밤은 낱낱이 해부된다 동이 트기 전, 동공이 먼저 열리고 눈썹 끝에 슬어놓은 벌레의 알들은 내 눈 속의 외계外界의 상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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