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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두일 시인 / 봄이 오기 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6.

김두일 시인 / 봄이 오기 전

 

 

 남으로 가는 기차를 타겠습니다. 더딘 열차에서 노곤한 다리, 두드리는 남루한 사람들과 소주잔을 나누며 지도에도 없는 간이역 풍경들과 눈인사를 나누겠습니다. 급행열차는 먼저 보내도 좋겠습니다.

 

 종착역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자운영이 피고 진 넓은 들을 만날 수 있다면, 들이 끝나기 전, 맨발로 흙을 밟아 보겠습니다. 신발을 벗어들고 천천히 흙내음에 한참을 젖겠습니다. 쉬엄쉬엄 걷는 길, 그 끝 어디쯤에 주저앉아 혼자 피어있는 동백이며 눈꽃이며 키 작은 민들레의 겨울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서두르지 말고 봄이 깊기를 기다리라고 이르기도 하겠습니다.

 

 기차가 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봄이 오는 소리에 귀를 열고 해지는 들에서 노을 한 개비를 말아 피우겠습니다. 이제껏 놓지 못한 시간을 방생하겠습니다.

 

 봄이 오기 전, 완행열차를 타고 남으로 가겠습니다. 남녘 어디라도 적당합니다.

 

 


 

 

김두일 시인 / 김선우를 검색하다

 

 

 한참 잘나가는 시인 김선우를 찾느라 인터넷 검색창에 김선우를 쳤더니, 젊고 우람한 프로야구 선수 김선우가 얼굴을 내밀더군. 영혼을 짜내어 시를 써놔도 돈이 되지 않는 시는 몸값만 억억 해대는 프로야구 위력에 이름도 못내밀고, 야속한 생각에 시인 김선우라고 고쳐 다시 검색해봐도 시인이란 시를 쓰는 사람, 김선우는 여전히 프로야구 선수

 

 이 시대가 요구하는 근육이나 만들어 볼 요량으로 아들녀석의 야구공을 꺼내 공터에서, 온 몸을 부풀려 김선우처럼 공을 던졌더니 엉뚱한 곳으로 날아간 야구공, 어느 집 호화로운 유리창을 단박에 박살내더군. 고함소리 팽겨쳐 두고 한달음에 도망쳐 와 얼른 김선우를 집어들었지.

 

 누가 사는 지도 모르는 집의 꽉 닫힌 창문 하나 기세 좋게 박살내고 도망쳐온 내게 시인 김선우가 "그까짓 것 그까짓것" 하면서 등을 두드려 주고, 야구공보다 단단했던 내 마음은 비로소 가벼워져 출렁대더군. 거참, 신통하기도 하지. 대체 시가 뭔지...

 

 


 

김두일 시인

1964년 서울 출생. 격월간 <좋은문학> 시부문으로 데뷔. 천리안 문단작가 협회 회원. 계간지 <시와 창작> 작가 모임 회원. 공저시집 <기억으로 도는 시계바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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