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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장석원 시인 / 반향(Echoes)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1. 26.

장석원 시인 / 반향(Echoes)

 

 

저 너머 알바트로스

공중에서 정지비행하네

물결치는 파도 아래

산호 동굴의 미로 속에 웅크렸던

먼 시간의 메아리

모래톱을 가로질러 버들피리처럼 퍼져오네

여기 모든 것은 초록과 잠수함

 

아무도 우리를 그곳으로 부르지 않고

아무도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왜 그런지

알지 못한다네 무엇인가

휘몰아치고 무엇인가

시도되는데

빛을 향해 상승하기 시작하는 것

 

낯선 사람들이 거리를 지나고 우연히

분리된 두 시선이 만나고

나는 당신이고 내가 보는 것은 나인데

나는 당신을 손으로 잡을 수 있는지

당신이 나를 그곳으로 인도할 수 있는지

도와줘요 이것이 나의 최선이라고 이해할 수 있게

 

아무도 우리를 그곳으로 부르지 않고

아무도 살아서 그곳을 넘어가지 못하고

아무도 말하지 않고 아무도 시도하지 않고

아무도 태양 주위로 날아오르지 않고

 

매일 당신은

깨어 있는 내 눈으로 떨어져 내리고

나를 불러 일어나라고 부추기네

벽의 창문을 지나 날개 펼친 햇빛이 흘러드네

아침, 백만의 밝은 대사들

 

아무도 나에게 자장가를 불러주지 않고

아무도 내 눈을 감겨주지 않네

하여 나는 창문을 더 넓게 열고

하늘 저 너머 당신을 부르네

 

 


 

 

장석원 시인 / 빌라 빌라 그런데 빌라

 

 

문을 열기도 전에 녹아내린 자 눈꺼풀 아래 침몰한 신음

머나먼 고향 언덕의 금잔디 매기 내 사랑아 미끌거리는

남자의 눈물은 캪틴큐 망자의 술잔에 넘실대는 그리움 또는

피아노 연주자의 손가락 마비 같은 절망과 일렁이는 심홍 두려움

집에도 못 들어간 채 도어 락 앞에서 (비밀번호는 7724610) 잠든 남자의

젖은 사타구니 입 벌린 바지 속의 빨강 신념처럼 딱딱해진

우리나라의 납빛 절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남부의 존망 때문에 조금 진지해지고 싶었을 뿐인데

내 주머니 속에는 파도도 어뢰도 따개비도 있건만

왜 거리는 가로수는 쓰레기통은 의류 수거함은 굳건한가

취한 자여 용기 있는 자여 슬픔을 마셔버린 자여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가자

후퇴를 모르는 31통 주민들이여 모두 나오시오

나를 구타해주신다면 내 슬픔을 브라운 믹서에 넣고 분쇄해주신다면

한 번만 안아주신다면 다솜 어린이집 노랑 버스 뒷바퀴에다

오줌을 갈기지는 않겠지만 나는 아직 어리잖아요 슬픔의 수피(水皮) 따위

알 수가 없으므로 나에게는 가르침이 필요해요 침을 뱉어주세요.

두려움이 무게를 잃고 척척해지고 오줌이 바지를 점령하고

마르지 않는 푸른 연무 같은 리넨 커튼 뒤의 불빛 주황 창문

그들 소행이겠지요? 그들이 그리워요 왜요? 왜요? 죽은 자는

죽은 자 돌아오지 않는 자의 망령이 거리를 떠도는데

우리 집은 빌라라니까요 옥상에서 뛰어내려도 다시 빌라

한번 시도할까요 상자 속의 상자 망치 속의 망치 반동 속의 반동 스프링 상수 K 어떤 살의 탄성 계수 E 육체와 건물의 포개진 체위 배 위에 올라와보시라우 가래떡 겹쳐진 듯 지나온 길이 하나가 되는데

모든 신호등을 격파하고 네거리에서 쌍쌍바처럼? 여보 여보 진실은

도굴되었다니까 저기 모텔 초록 파라오의 욕조에 물이 차오르고 뻐근하게 빠개지게 준비되었어요 탁 치니 억 하고...... 빠꾸 빠꾸 경동고 길에서

낙산 해돋이길로 그냥 블루로 저기 창고 앞 움직이는 어둠 앞 여기

내가 수장될 곳 눈을 잃어도 입 벌릴 수 없어도 몸이

귀소를 찾아 무사하게 안착 방뇨 후 넣지도 못하고 길을 걷는 자여

 

 


 

장석원 시인

1969년 충북 청주에서 출생. 고려대학교 국문과 및 同 대학원 졸업. 2002년 《대한매일(현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낙하하는 것의 이름을 안들 睡蓮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가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아나키스트』 『태양의 연대기』 『역진화의 시작』 『리듬』과 평론집 『낯선 피의 침입』. 음악에세이 『우리 결코, 음악이 되자』가 있음. 현재 광운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 2008년 제13회 「현대시학작품상」, 2010년 제1회 「통영문학상」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