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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지명 시인 / 사바나 주의보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1. 28.

김지명 시인 / 사바나 주의보

 

 

우기의 강을 건너는 초식동물이라고 말하자

흙탕물 재우고 눈을 감는 악어가 보인다

 

물낯에 비친 체면이 주름져 말이 아니다

얼굴 없는 궁리가 수면 아래 깊다

 

그림자 여럿이라 포획이 어렵고

그림자 하나지만 포식자라 두려운

 

서로가 짜 놓은 각본에

비는 호위무사로 붙들려 있다

 

앙상한 궁리일수록 근막에 살아

안부는 강물로 흘러 피받이 모래톱이 되고

 

하늘 공기와 친한 기린을 보고 싶다면

식전과 식후 없이 주문한 잠에 들고 싶다면

 

궁리와 멀어져 궁리를 유기해 보는 거

운명은 아무도 몰라 편주에 몸을 실어 보는 거

 

야생이 실려 온 들것에는

길들지 못한 현재가 저녁을 선점하고 있다

 

-시집 『다들 컹컹 웃음을 짖었다』에서

 

 


 

 

김지명 시인 / 블루 플래닛

 

 

수천 오리 페가 바다를 점령합니다 행성호가 난파와 애인 놀이를 하다 낳은 성마름의 자리입니다 한자리에 모였다 흩어지는 모습은 마른 꽃잎이 물에 잠겼다 피어나 장난 같아 보입니다 바다는 뿔뿔이 혼자를 만듭니다 장난감이 아니었다면 노랑 오리는 가라앉아 날개와 다리가 부식되고 산호가 되었을 것입니다 노랗거나 파란 물고기들이 종족의 냄새를 찾아 주위를 배회했을 것입니다 스노클링 하는 사람들이 빵을 던져 주어 외로움은 산호 속에서 아름답다는 말로 빛날 것입니다 바다 꿈속을 그대로 둔 채 빠져나온 노랑 오리는 여기를 둔 채 저곳으로 떠납니다 눈을 뜨고 떠나도 아일랜드 연안의 사랑받을 예감에 닿지 않습니다 나는 내 이름에 닿지 않습니다.

 

-시집 『다들 컹컹 웃음을 짖었다』에서

 

 


 

김지명 시인

서울에서 출생. 인하대학교 사회교육과 졸업.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수료. 2013년 《매일신문》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쇼펜하우어 필경사』(천년의시작, 2015), 『다들 컹컹 웃음을 짖었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