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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소영 시인 / 달의 산책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1. 29.

박소영 시인 / 달의 산책

 

 

하루의 마지막 의식을 준비하는 주방

밀고 들어오는 어둠이 저녁의 문턱에서 주춤거리는데

제물로 쓰일 메밀나물 데친다

마지막 한 움큼 집어넣으려는 찰나

손등으로 튀어 오르는 애기방아깨비

순간 소금처럼 돋는 소름

가느다란 다리 바르르 떨며 빤히 쳐다보는 큰 눈

후둘둘 떨리는 다리 뒷걸음질 쳐 방충망 열고 날려 보낸다

작은 날개 파르르 떨다가

난다

난다

대추나무 잎에 앉아 숨고르기 하다가

또 난다

풀섶까지 날아간다

어둑어둑한 그림자 딛고 둥실 떠오르는 달

명주필처럼 내리는 달빛아래

새끼 장돌뱅이 동이가 딸랑딸랑 나귀방울 울리며 메밀꽃 환한 길 걸어온다

메밀밭에서 온 방아깨비 달빛너울 속으로 날아간다

 

 


 

 

박소영 시인 / 꽃 속의 꽃

 

 

도라지꽃을 보다가

보랏빛 잎맥에 펼쳐진

여리고 고운  

실핏줄 따라 안으로 드니

흰 빛의 꽃

다소곳이 피어 있다

이렇게 작은 꽃

품고 있었구나

꽃 속에 든 꽃 보며

눈물처럼 흐르는 감정 따라

눈을 들어보니

하늘의 태양이, 구름이

물속의 물고기들이

꽃 속의 꽃이었다

찻잔 속의 차와

밥그릇 안의 밥이

신발 안에 든 발이  

생각의 꼬리에 핀 도라지꽃

 

꽃 속의 꽃이 우주다

 

-시집 『사과의 아침』에서

 

 


 

박소영 시인

전북 진안 출생.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학예술학과 졸업. 충남대학교 예술대학 일반대학원 서양화 전공 재학. 2008년 《詩로 여는 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나날의 그물을 꿰매다』 『사과의 아침』이 있음. 현재 한국시인협회 회원, 대전작가회 이사, 충남시인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