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영 시인 / 달의 산책
하루의 마지막 의식을 준비하는 주방 밀고 들어오는 어둠이 저녁의 문턱에서 주춤거리는데 제물로 쓰일 메밀나물 데친다 마지막 한 움큼 집어넣으려는 찰나 손등으로 튀어 오르는 애기방아깨비 순간 소금처럼 돋는 소름 가느다란 다리 바르르 떨며 빤히 쳐다보는 큰 눈 후둘둘 떨리는 다리 뒷걸음질 쳐 방충망 열고 날려 보낸다 작은 날개 파르르 떨다가 난다 난다 대추나무 잎에 앉아 숨고르기 하다가 또 난다 풀섶까지 날아간다 어둑어둑한 그림자 딛고 둥실 떠오르는 달 명주필처럼 내리는 달빛아래 새끼 장돌뱅이 동이가 딸랑딸랑 나귀방울 울리며 메밀꽃 환한 길 걸어온다 메밀밭에서 온 방아깨비 달빛너울 속으로 날아간다
박소영 시인 / 꽃 속의 꽃
도라지꽃을 보다가 보랏빛 잎맥에 펼쳐진 여리고 고운 실핏줄 따라 안으로 드니 흰 빛의 꽃 다소곳이 피어 있다 이렇게 작은 꽃 품고 있었구나 꽃 속에 든 꽃 보며 눈물처럼 흐르는 감정 따라 눈을 들어보니 하늘의 태양이, 구름이 물속의 물고기들이 꽃 속의 꽃이었다 찻잔 속의 차와 밥그릇 안의 밥이 신발 안에 든 발이 생각의 꼬리에 핀 도라지꽃
꽃 속의 꽃이 우주다
-시집 『사과의 아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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