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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여성민 시인 / 타일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1. 30.

여성민 시인 / 타일들

 

 

가지런하고 타일은 아름답습니다

 

당신은 괜찮습니까

 

황홀하거나 타일의 방에서 만나요

슬픈 발로 서 있으면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오, 판결문처럼, 규칙과 반복

하얀 타일을 들고

 

엄숙하게 선서해요 고요한 정사를 위해 타일들과 결혼해요

 

타일을 신고 걸으면 나는 두 발이 빛나는 사람

 

당신의 가슴은 달고 사과처럼 차가워요

따뜻한 물로 발을 씻고 두 발을 앞으로 내밀어요 발톱을 가진

 

심장이 됩니다.

 

더 슬픈 발로 서 있는 사람이 됩니다

당신들은 괜찮습니까

 

타일 하나가 깨지는 날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발은 유죄를 선고받지만

 

타일을 타인처럼 사랑하면 돼요 타일과 걸어요

슬픈 발과 슬픈

 

​발을 동시에 내밀면서 심장으로 걸을 수 있고

타일은 소리를 갖게 됩니다

 

양말을 벗고 타일 앞에서 만나요 박동 소리를 들어요

발이 타일을 깨고 나가는 소리를

 

아픈 발의 증언을

 

 


 

 

여성민 시인 / 시간은 어디에서 태어나

무엇으로 사라지는가

 

 

명자나무 아래 앉아 엄마는 명자나무를 생각한다

엄마 아래 앉아 나는 명자가 무엇인가 생각한다

 

명자나무는 명자를 모른다

어둠 속에서 나는 어둠의 무엇에 대해 생각한다

 

나무의 어둠은 무엇인지 꽃의 어둠은 꽃인지

어둠의 속에 대해 생각한다

 

어둠은 꽃처럼 나무 아래 쌓인다

어둠이 벽으로 부푸는 한순간을 본다

 

벽은 하나의 순간이다

벽에는 바람의 선들이 잠들어 있다 누가 바림의 실을 뽑아낸다

 

바람이 분다.

 

영원히 소멸하며 벽이 서 있다

어둠에는 무엇이 없어 어둠 속에서 나를 뽑아내지 못한다

 

명자는 명자나무를 안다

명자나무는 어둡다

 

명자나무 아래 누워 나는 어둠의 일을 생각한다

어둠의 일은 어둠이 하는 일이라 어둡다

 

무엇의 일은 무엇이 하는 일이라 무엇이라 말할 수 없다

엄마는 명자나무 아래 누워 명자나무 아래를 생각한다

 

명자나무는 어둡다

 

 


 

여성민 시인

1967년 충남 서천에서 출생. 안양대학교 신학과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2010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에 소설이 당선되어 등단. 201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저서로는 시집으로 『에로틱한 찰리』(문학동네, 2015)와 구약 내러티브를 해석한 책 『돋보기로 보는 룻기』와 『꼭꼭 씹어 먹는 사사기』가 있음.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