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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수우 시인 / 聖발바닥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1. 30.

김수우 시인 / 聖발바닥

 

 

사하라의 노을을 넘다가

신발을 벗고 동쪽을 향해

무릎 꿇는다

모래비탈에 입맞추며 기도하는

흰옷 입은 모슬렘 사내

왜 엎드린 사람의 키가 더 클까

위대한 건 신이 아니라

모래로 빚어진 나그네다

흙먼지에 수만금 갈라진 聖발바닥

옷자락 날리며 핏빛 산맥을 다시 걸어가는

모래만 내짚는 모랫덩이의

맨꿈, 맨뒤꿈치

그 삼 억만년 퇴적된.

 

 


 

 

김수우 시인 / 수련 지는 법

 

 

단골찻집 주인이 바뀌었더군 꽃핀다고 들러도 싱거운 눈웃음, 꽃진다고 들러도 맹물 손인사, 잊힐 뻔 잊힐 뻔한 안부마다 한 톨 답례 고맙더니 그 씨앗 받아 여기저기 나누었더니 어느 결에 헤어지고 만 게야, 마음 비운 사이

 

수련 지는 법을 들었네 몇날 철없이 꽃비 뿌리거나 제 열정에 겨워 몸던지는 게 꽃지는 방식이거늘 수련은 잠잠히 물 속으로 돌아가지 소금쟁이가 딛은 고요를 돌아보는 어느 결에 송이째 물에 잠긴다네, 마음 비운 사이

 

고운 사람 내게 수련처럼 졌으니 나도 그에게 한 꽃자리일까 고운 사람 누구에겐가 수련으로 피어날 테니 물속 줄기, 먼 산 하나 풀어내리라 물그림자 흔들리는 그, 어느 결에 내 옷자락도 젖을 테지, 그, 마음 비운 사이

 

 


 

김수우 시인

1959년 부산 출생.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5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길의 길』 『당신의 옹이에 옷을 건다』 『붉은 사하라』 『젯밥과 화분』 『몰락경전』. 번역시집 『호세 마르티 시선집』 그리고 비평집 『호세 마르티 평전』, 산문집 『쿠바, 춤추는 악어』 『호세 마르티 평전』외 십여 권 상재. 부산작가상 수상, 최계락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