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김서은 시인 / 위대한 brunch!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2. 5.

김서은 시인 / 위대한  brunch!

 

 

 이제 당신에 대해 진술하기로 한다. 새들이 한 쪽 날개를 기우뚱거리며 세상의 푸

른살 속으로 사라진 뒤 내가 분홍빛입술로 당신의 품속으로 잦아들던 그 때처럼 아침은 아침에게 어제의 예언을 넘겨주고 밥 한 그릇 후후 불어가며 뜨겁게 달구어지고 싶다 어둠이 심장을 관통하는 정오의 한 때 오래전 손목이 잘려나간 푸른 청춘에게 따뜻한 밥 한 수저씩 떠 먹여주고 싶다, 말하면 이미 저녁일까? 차가움과 뜨거움이 뭉그적거리는 풍성한 식탁위에서 비릿한 입을 벌리며 몰입하였던 어제의 예언들은 적중했을까 형광 빛 윈도위에 펼쳐진 집장 촌 여자들의 붉은 머리카락같이 빛나는 오늘 웅크리고 앉아서 위대한 brunch! brunch! brunch!

 

 


 

 

김서은 시인 / 고래에게 낚이는 또 하나의 방법

 

 

 고래나 낚으러 떠나볼까 가장 깊은 서울의 모퉁이를 돌아돌아 심심풀이 기차를 칙폭 칙폭 타고 물속으로 가라 앉아 구두를 벗어, B컵 형상기억 비비안을 벗어, 동해 바다 끄트머리에 번지 점프를 하네, 음파음파 허파꽈리를 부풀리며 고래고래 불러 보네

 

 고래가 살고 있네 불 꺼진 빌딩에 빌딩과 구름이 침묵하는 동안 옥상은 고래를 키우고 있었네 반짝이는 어둠 한철 내내 고래만 보듬고 있었네 그 젖은 눈동자 속에 은빛 지느러미 옴지락거리는, 붉은 콧구멍만 벌름거리는, 고래 고래들

 

 누가 저 고래 좀 잡아줘, 목소리가 울리고 물속이 점점 따듯해지고 내 팔이 점점 짧아지네 엉덩이에 비늘이 돋고 있었네 하얗게 분칠한 엄마는 왜 돌아오지 않는 걸까 머릿속 푸릉푸릉 날아다니는 고래들, 제발 고래 좀 꺼내 줄래

 

 잘가거라 또 올꺼니, 우주에서 가장 깊은 서울로 모퉁이를 돌아돌아 도둑고양이처럼 잠입해 볼까 동해와 바이칼 호수 어디쯤 폭력적으로 눈이 온다는데 우수와 내 생일사이 수직커튼이 펄럭이고 한 밤 전화벨이 킁킁거리고, 심심한데 저랑 고래나 한 번 타보실래요. TV밖으로 고개를 쑤욱 내민 수염고래 한 마리

 

 


 

김서은 시인

2006년 《시와 세계》 여름호로 등단. 시집으로 『살아있는 날들의 빛깔향기』 『겨울을 건너는 숲』 『위대한 브런치』 『안녕, 피타고라스』가 있음. 2018년 <시와 세계>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