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리영 시인 / 깍두기 비빔밥
며칠 째, 좁은 길 달려 집으로 오면 서걱이며 씹혀 올 식감이 떠오른다.
이미 잘린 깍두기를 싹둑싹둑 썬다. 잘린 것과 자르는 사람 사이 붉은 물이 튀어 오른 것도 잠시
간이 밴 무의 섬유질을 뜨거운 팬에 펼쳐 놓은 살림 들기름을 하염없이 두른다. 오갈 데 없이 노릇노릇 타는 밥술
더 늦춰질 수 없는 정년(停年)! 코로나가 사라질 때까지라도 일터에 눌어붙을 수 없을까?
포기할 수 없는 늦은 식사 깨작이던, 달빛 닮은 숟가락이 베이고 짓이겨져 파묻혀버린 완숙한 깍두기 맛을 퍼 올려준다.
김리영 시인 / 춤으로 쓴 편지
금박쾌자에 가슴띠 두르고 등장하면 어깨에 머문 긴장쯤 녹아내려야 해 낯선 관객 앞, 어색한 기분 가라앉히고 손끝이 자유롭게 움직일 거야
멎은 호흡 툭 떨어뜨리고 관자놀이 스친 손끝으로 희망을 길어 올려봐 지금이 절정이야, 기회를 미루지 마 두 바퀴 반, 도드라지게 돌고 아슬아슬했던 순간은 잊어버려 음악은 두 소절 남아 있어
단 한 장 찍어내는 모노타이프 발밑에 밟혀오는 뜨거운 활자들 3분 34초 공연 시간이 흘러가버리면 다시 불 켜져도 읽을 수 없을 거야
참을 수 없게 차오른 숨 춤으로 맥박을 바치는 편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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