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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경숙 시인 / 뼈의 행동반경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10.

김경숙 시인 / 뼈의 행동반경

 

 

오래된 무덤을 파묘해보면

가지런해야할 뼈들이

조금씩 흩어져 있는 일이 있다네요

 

그건, 죽음이 죽음을 온전하게 데려간

흔적이라고도 한다는데요

그러니 어떤 죽음이든 그 형태는

허술해지고 마는 일이겠지요

아무리 견고하게 묶은 결박도

다만, 육신의 일일 뿐이니까요

육신으로 정한 것들치고

정확힌 것들이 어디 있나요

이곳저곳 아픈 몸으로 끌고 온 일들 중에

버리고 싶지 않은 일들이

왜 없었겠어요

자신의 몸에서 화농과 부패와 미물들과

한판 걸 지게 놀고 난 다음

깨끗하게 정리된 뒤에 야나

비로소 죽음, 고요로 드는 일일 테니

뼈의 위치들이 조금씩 엇갈려있다 한들

대수로운 일은 아닌 셈이지요

삶을 지탱하는 것들, 단단한 뼈들이 아니라

잡다한 것들 이었다는 증거인 셈이지요

하물며 살아서도 자꾸만

몸에서 멀어지고 엇갈리는 뼈들이 있어

손닿지 않는 몸의 구석이

가묘(假墓)처럼 있는 걸요

웹진 『시인광장』 2022년 10월호 발표

 

 


 

김경숙 시인

1958년 강원도 화천 출생. 서울디지털대학 문학창작학과 졸업. 2007년 《월간문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 2008년 『수필시대』 수필부문 신인상 당선. 시집 『소리들이 건너다』 『이별 없는 길을 묻다』 『먼 바다 가까운 산울임』 『얼룩을 읽다』 『빗소리 시청료』. 수필집 『우리 시대의 나그네』 세종문화예술상 문학대상 수상. (사)한국문인협회 공로패 수상. 부산시단 작품상수상. 한국해양문학상 우수상 수상. 『모던포엠』 문학상 본상 수상. 부산문학상 본상 수상. 『모던포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