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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숙 시인 / 가설무대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11.

정숙 시인 / 가설무대

 

 

절대로 원한 적 없었을 텐데

무대가 이미 펼쳐져 있었지

꽃도 향기도 싫었지만

때 되면 열매 맺어야 사람이 된다

앵벌이 위해 향 피우고

꽃잎 다듬어야 한다 재촉하더니

이제 왜 무대를 거두려 하고 있나

초침소리, 거품 물고 다그친다

넋두리가 후추 뿌리고 있다

가래 끓는 속으로 갇힌 기침소리

시간의 넋 흔들어대며

잠깐 펼쳤던 판, 파장이다

팔십년 한 생이 마감하느라

팔 오년 팔월 삼일 새벽 네 시라는

손주 며늘의 말에

핏빛 모란 송이 큼지막이 그리곤

인연의 끈 스륵 놓아버린다

비로소 날개 돋아나는 걸 믿는지

미소 머금은 채

웹진 『시인광장』 2022년 10월호 발표​

 


 

정숙 시인

경북 경산에서 출생. 본명: 정인숙. 경북대 문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3년 계간 《시와 시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 『신처용가』, 『위기의 꽃』, 『불의 눈빛』, 『불의 눈빛』,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등을 출간. 대구문학아카데미 현대시 창작반 강의. 현재 현대불교문인협회 대구경북지회장, 대구시인협회 부회장, 대구작가회의 이사, 시와시학동인회 부회장. 2010년 1월 제1회 만해님시인상 작품상 수상. 2015년 12월 23일 대구 시인 협회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