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남 시인 / 푸른 돌
셀 수 없는 시간을 견디고 나면 푸른 한때를 걸칠 수 있는 것인가 오직 풍화만이 꽃피워 낼 수 있는 푸른 돌 그 지붕엔 빼곡하게 몸 밖으로 나온,
푸른 이끼가 돋아나 있다 식물의 한때를 키우고 있는 바위, 내 육신 면면의 살점들도 저 바위처럼 풍상의 이력들을 쌓아가고 있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의 이끼가 듬성듬성 끼어있다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습지의 호흡들은, 어쩌다 저리 딱딱한 몸을 빌려 한 생을 살다 가는지
바위 속에 푸르게 끓고 있는 엽록 아침 이슬로 목을 축이고 있는 어느 아낙의 불심佛心처럼 바람에 흔들려 몸 밖으로 나오는 것들 하나의 씨알이 순산되는 운명
푸른 무게 한 채가 쿵하고 마음에 떨어진다
이승남 시인 / 여우야 여우야
푸른 온도가 높아지고 기절하는 순간이 툭하고 떨어진다 불가사의에 대해 제대로 공부한 적 있었나 아픈 것들을 공부한 적 있었나 몸은 어떤 허기를 지나가기에 통증을 받아먹기만 하나 미적분의 내종內腫들 왜 한 번도 우수수 떨어지지 않나
여우 꼬리가 흔들릴 때마다 門들이 門밖으로 나간다 닫힌 문틈으로 애벌레가 기어들어오고 뾰족한 부리들이 콕콕 집어먹고 있는 통증 어떤 통증에서 부화한 나방들이 신경 속을 날고 있나
너무 오래 혼자 아프다 근처 성당의 종소리들이 문병을 다녀간다 생사生死를 버린 지 오래 됐다 애벌레들이 입 냄새로 기어 나오고 그것들은 진화한 소리를 갖고 있다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가끔 神이 아닌 알약들의 이름에게 기도할 때가 있다 전지전능한 약효에게 살뜰하게 말 걸 때가 있다 한낮의 뜨거운 이마를 짚고 있다가 손을 바꿀 때 안 아픈 곳이 있긴 있었구나 손을 오래 내려다보는 때가 있다
-시집 『물무늬도 단단하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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