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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영춘 시인 / 모래의 시간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14.

이영춘 시인 / 모래의 시간

 

 

이 세상 끝에 와 있다는 느낌

그 사이로 강물이 흘러가고

발자국들이 지나가고

슬픔 같은 이끼가 툭툭 걸음을 멈추게 하는데

나는 건너갈 세상을 돌아본다

어둠 저 끝에서 몰려오는 바람소리

누군가 내 등 뒤에서 마음 한 끝을

비수로 꽂고 달아난다

이 세상 황량한 이중성의 간판들

점멸등처럼 깜빡이는데

어제는 바람이 되었다가

오늘은 사과가 되고 오렌지가 되고 박제가 되어

몸의 꼬리를 감추는 사람들

탓하지 마라, 눈동자의 크기만큼 보이는

세상 안에서 세상 바깥에서

홀로 남은 자들의 뒷모습

사막의 신기루처럼 서서

내 가는 길 묻지 않으리라

 

계간 『시와 사람』 2020년 여름호 발표

 

 


 

이영춘 시인

강원도 평창 봉평 출생. 경희대학교 국문과 및 同 대학원 졸업. 197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시시포스의 돌』 『귀 하나만 열어 놓고』 『네 살던 날의 흔적』 『슬픈 도시락』 『시간의 옆구리』 『봉평 장날』 『노자의 무덤을 가다』 『신들의 발자국을 따라』와 시선집『들풀』 『오줌발,별꽃무늬』 등이 있음. 윤동주문학상. 고산문학대상. 인산문학상. 강원도문화상. 동곡문화예술상. 한국여성문학상. 유심작품상 특별상 등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