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담 시인 / 요양원
긴 목 유리병 속에서 나를 꺼내 줘
꽃은 보이지 않고 장미 한줄기 꽂아두고 어서 타고 오르라고 말하는데 잡을 수 있을 곳에는 가시가 촘촘히 자라 있었다 억센 가시들은 살아있음을 재확인시켜준다
꽃나무 줄기를 놓지 말라며 들려준다 부정은 부정을 낳는다는 수많은 사례들 증발하는 물처럼 조금씩 잃어가는 기억 두부처럼 부서지고 으깨지면서 꽃은 곧 지고 말거라는 사실을 잊곤 하지 이미 지고 없는 줄기를 붙들고 있다는 것마저도
나를 바라보는 나들 빨대이거나 꽃대이거나 사다리이거나 늘 열려있는 쪽은 멀고 보이지 않을 뿐
민낯을 보게 되는 날 사라지게 될 한 영혼을 위한 비밀스런 축제 꽃을 보았다고도 보지 못했다고도 하지 못하고
기억을 초대하기 위해 누군가 물을 채우고 금붕어 한 마리 풀어 놓는다
이지담 시인 / 면과 면이 만나는 지점
혼자서는 빛을 품을 수 없는, 그냥 돌이라고 불러줘
깜깜한 지구에서 눈을 깜박이며 신호를 보내는 돌들 어둠을 빚는 세공사의 손끝에서 가장 멀리 달려온 빛을 끌어당겨 어둠의 눈은 새겨진다 빛은 어둠과 몸이 섞이며 빚은 몸짓으로 잠깐 그리움이 되고
강한 돌에게 강한 돌이 맞부딪히면서 빚어내는 결 스스로 빛을 낼 수 없다는 흠결은 나중 일이 되고
얼굴과 얼굴, 옆모습과 옆모습, 얼굴과 뒤통수 심리상태에 따라 무수한 면이 빚어지고
반딧불이가 스스로 불을 붙이고 날아오를 때 너의 가슴은 더 뛰었을 테지만 한 심장 위에 포개지는 태양의 잔여물을 살리는 방법은 수만 가지
빛나는 사랑이 오고 가는 수만 번의 번갯불이 겹겹으로 마음의 결을 지나 빛이 한데 모여지는 지점
찬란한 빛의 값은 끝없이 나를 깎고 문지르면서 빛을 수집하여 사랑을 새겨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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