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아 시인(남원) / 뒤뜰
뒷문밖엔 이마 서늘한 그늘이 산다 저 늙고 병든 짐승 윙윙 댓잎 같이 날선 바람을 사철 등에 업고 산다 한나절도 못되어 슬금슬금 뒷걸음쳐 구석까지 밀려나 바싹 엎드린다 어둑발 들이치기 무섭게 몸져누워버린 발톱은 늘 축축하다 마흔 해도 더 싸리꽃잎처럼 붉은 송아지 울음을, 자욱이 깔리는 저녁연기를, 사랑하면서도 한 발짝도 나서지 못해 괴괴한 열사흘 달빛에 곤두서는 털가죽 앞마당 가득 출렁이는 햇살은 뒤뜰에 엎드린 짐승의 뜨거운 입김이다
-시집 <봄날의 한 호흡> 2011
최정아 시인(남원) / 바겐세일
반값이란다 신발도 핸드백도 반값이라고 외치는 판매원이 서둘러 딸을 시집보낸 아버지처럼 보인다
신어보고, 메어보고 이미 전단지로 뿌려진 반 생 누군가의 손에 들린 구두코가 서럽다
반값이 되기 전에 서두르라고 세상은 다그치지만 꼭 입을 다문 핸드백속에는 네 발을 가진 짐승의 일생이 요약되어 있을 것이다
저 가죽의 무게는 서둘러 떠나간 목숨의 값 뜨거운 울음이 담긴 핸드백 속 깊이를 가늠하기엔, 너무 화창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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