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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정아 시인(남원) / 뒤뜰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14.

최정아 시인(남원) / 뒤뜰

 

 

뒷문밖엔 이마 서늘한 그늘이 산다

저 늙고 병든 짐승

윙윙 댓잎 같이 날선 바람을

사철 등에 업고 산다

한나절도 못되어 슬금슬금 뒷걸음쳐

구석까지 밀려나 바싹 엎드린다

어둑발 들이치기 무섭게 몸져누워버린

발톱은 늘 축축하다

마흔 해도 더

싸리꽃잎처럼 붉은 송아지 울음을,

자욱이 깔리는 저녁연기를, 사랑하면서도

한 발짝도 나서지 못해 괴괴한

열사흘 달빛에 곤두서는 털가죽

앞마당 가득 출렁이는 햇살은

뒤뜰에 엎드린 짐승의 뜨거운 입김이다

 

-시집 <봄날의 한 호흡> 2011

 

 


 

 

최정아 시인(남원) / 바겐세일

 

 

반값이란다

신발도 핸드백도 반값이라고

외치는 판매원이

서둘러 딸을 시집보낸 아버지처럼 보인다

 

신어보고, 메어보고

이미 전단지로 뿌려진 반 생

누군가의 손에 들린

구두코가 서럽다

 

반값이 되기 전에 서두르라고

세상은 다그치지만

꼭 입을 다문 핸드백속에는

네 발을 가진 짐승의 일생이 요약되어 있을 것이다

 

저 가죽의 무게는

서둘러 떠나간 목숨의 값

뜨거운 울음이 담긴 핸드백 속 깊이를

가늠하기엔,

너무 화창한 날이다

 

 


 

최정아 시인(남원)

전북 남원 출생. 2002년 전북 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04년 <시선> 등단. 전주문학상 수상. 시집 <밤에도 강물은 흐른다> <봄날의 한 호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