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자 시인 / 해자네 점집
해자네 점집 술은 좋아하지만 술 마시면 눕지 못하는 지병이 있는 그 여자, 술이 출렁거리는 머리에 무슨 책이 들어오리요만, 딸내미 머리맡에 차곡차곡 쌓인 책은읽어졌다는데 그 딸내미도 참 희한하지, 전문 컴퓨터 하나 빼면 주역 사주명리학 애니어그램에 점성학 타로까지 동서양 기기묘묘한 학들이 도표와 그림 속에 들어 있었다는데 어느 땐가 그 여자 기초수급자를 위한 소양 교육이라는 것을 갔다, 시무룩 진짜 수급자처럼 앉아들있는 통에 금방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눈매 하나찍어서 실실 타로 점을 봐주기 시작했다는데, 그렁그렁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고야말았고 눈물이 강물이 되어 한번 휘몰아 간 뒤에, 지퍼 속에 갇힌 입들이지퍼를 열고 나와 저도요 저도요 하는 통에 수업을몽땅 타로 점 봐주는 일로 공치고 말았다는데쫓겨나고 이혼하고 망하고 언제 바닥치고 손목 긋고 꽁꽁 짜매는 이야기가 술술 쏟아졌다는데, 그라도 지가 글쓰기 선생으로 왔는데요, 오늘 풀어놓으신 야그를요, 고대로 써가 오시믄 사주도 봐드린다카이, 그다음 주 소설 같은 인생 읽어내느라 날밤 새웠다는데 내는 단 하나뿐인 당신이란 별을 보고 있데이, 사람살이가 뭐꼬, 밥 나눠 묵음서니캉내캉 가심에든 이야그 들어 돌란 것 아이겠나, 일하고 놀고 술 먹는 뒤끝마다 신빨 영빨 차곡차곡 쌓은 그 여자 슬슬 영업을 개시했다는데, 말 이을 새도 없이 저짝에서 오대양 육대주가 쏟아져나와이짝에선 듣기만 했다는데, 억수로 고맙다고 오천 원 만 원 마빡에 붙여줘서 2차 3차 술값도 계산한다더니이리 서로 올려다보이 얼매나 좋노? 쪼매만 기둘려보래이, 고마 꽃멍울이 꽃때옷될 날이 올끼니까네, 뻘소리 치던 그 여자 어느 날은 만만한 내 이름두 자 빌려 돌라더니, 걸어댕기는 점집을 차리고 말았으니 그 이름하야 해자네 점집이라 카더라
김해자 시인 / 머리말에 막걸리 두 병 놓여 있었다
붉은 접시꽃 옆에 다수굿이 서 있던 살구나무 집 어매 반나마 없어진 이를 가리며 합죽 웃었다 술 있시믄 한 병 빌려줘유 낼 트럭 오믄 갚으게 테리비는 지 혼자 뭐라뭐라 떠들어대지 껌껌하니 나갈 수가 있나 이야기 할 사람이 있나 술이라도 없었으면 어찌 살았을까 몰러 질고 진 밤 후루룩 김치 국물이나 마시다 곯아떨어지는 겨 고대로 가는 중도 모르게 갔시면 좋겟네 희망근로 새겨진 노란 조끼 입고 새벽같이 빗자루 들고 나다니더니 고추밭 이랑에 엎드려 있더니 어느 날은 콩밭 매다 호미처럼 구부리고 주무시더니, 청국장 띄우는 집 들러 김 모락모락 나는 콩 몇 알 뭉쳐 자시고 정신 오락가락하는 친구 집 들러 코피 한잔 나눠 자시고 허청허청 집으로 가더니 고대로 가셨다 머리맡엔 막걸리 두 병이 댕그마니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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