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경 시인 / 국수집 연가
허기진 수화를 주고받던 젊은 남녀 잔치국수 한 그릇 주문하더니 안도의 눈빛 건네고 있다
하루 종일 낯선 시선들 밀쳐내느라 거칠어진 손의 문장(文章)들은 국수 가락처럼 풀어진 때 늦은 안부에도 목이 메어 오고
후루룩 후루룩 국수발을 따라 온 몸으로 울려 퍼지던 저 유쾌한 목소리들 세상 밖 유배된 소리들이 국수집 가득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면 연탄난로 위에 모인 이국의 모국어들도 노랗게 익어 갈 것이다
혹여, 누구라도 이 집이 궁금해 찾아가려거든 낮달 같은 뒷골목 가로등 몇 개쯤 통과해야 한다 또 다시 막다른 슬레이트집 들창문을 엿보던 접시꽃 무리지어 고개를 주억거리고 누군가의 발자국보다 개 짖는 소리가 먼저 도착해 온 동네를 흔들 것이다
거기 푸른 문장들을 뽑아 삶아내는, 오래된 연인의 단골 국수집이 웃고 있을 것이다
김종경 시인 / 돌싱 그녀
유모차에 조간신문을 차곡차곡 싣고 달리는 그녀. 삶과 죽음을 외면한 보수와 진보가 뒤엉켜 싸우는 세상을 새벽부터 배달한다.
한 평생 신문에 난적 없는 자기 삶보다 남의 삶이 비에 젖을까봐 더 전전긍긍하는, 시장 골목에 쓰러져 잠든 취객에게 신문지 이불을 덮어 주며 안녕하라고 말하는, 내일이면 폐지가 될 세상과 인생을 위해, 더 이상 돌아갈 세상이 없다는 그녀.
유모차는 편의점 알바의 긴 하품과 쓰레기차에 매달린 사내들의 가쁜 숨소리까지 싣고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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