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김종경 시인 / 국수집 연가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14.

김종경 시인 / 국수집 연가

 

 

 허기진 수화를 주고받던 젊은 남녀 잔치국수 한 그릇 주문하더니 안도의 눈빛 건네고 있다

 

 하루 종일 낯선 시선들 밀쳐내느라 거칠어진 손의 문장(文章)들은 국수 가락처럼 풀어진 때 늦은 안부에도 목이 메어 오고

 

 후루룩 후루룩 국수발을 따라 온 몸으로 울려 퍼지던 저 유쾌한 목소리들 세상 밖 유배된 소리들이 국수집 가득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면 연탄난로 위에 모인 이국의 모국어들도 노랗게 익어 갈 것이다

 

 혹여, 누구라도 이 집이 궁금해 찾아가려거든 낮달 같은 뒷골목 가로등 몇 개쯤 통과해야 한다 또 다시 막다른 슬레이트집 들창문을 엿보던 접시꽃 무리지어 고개를 주억거리고 누군가의 발자국보다 개 짖는 소리가 먼저 도착해 온 동네를 흔들 것이다

 

 거기 푸른 문장들을 뽑아 삶아내는, 오래된 연인의 단골 국수집이 웃고 있을 것이다

 

 


 

 

김종경 시인 / 돌싱 그녀

 

 

 유모차에 조간신문을 차곡차곡 싣고 달리는 그녀. 삶과 죽음을 외면한 보수와 진보가 뒤엉켜 싸우는 세상을 새벽부터 배달한다.

 

 한 평생 신문에 난적 없는 자기 삶보다 남의 삶이 비에 젖을까봐 더 전전긍긍하는, 시장 골목에 쓰러져 잠든 취객에게 신문지 이불을 덮어 주며 안녕하라고 말하는, 내일이면 폐지가 될 세상과 인생을 위해, 더 이상 돌아갈 세상이 없다는 그녀.

 

 유모차는 편의점 알바의 긴 하품과 쓰레기차에 매달린 사내들의 가쁜 숨소리까지 싣고 달린다.

 

 


 

김종경 시인

1967년 경기도 용인 출생. 언론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신방과 졸업.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 박사과정 수료. 2008년 계간 '불교문예' 등단 작품활동 시작, 시집 『기우뚱, 날다』 저서로 포토에세이 <독수리의 꿈이 있음. 용인신문발행인, 대표.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 한국환경사진협회 초대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