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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영효 시인 / 최소한으로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13.

정영효 시인 / 최소한으로

 

 

 우리는 오랫동안 반응했다 우리는 싸움을 두려 워했고 결론을 조심했고 뒤바뀌길 바라면서 함부 로 예상하고 있었다  우리는 성장하는 우연을 기다렸으며 정해진 밤과 익숙한 음악 쪽으로 분명히 따라가고 있었다 우리는 소문을 버린 후에 다른 말을 찾으러 다니면서 너는 내가 아는  사람이지?  아무에게나 친절하게  손을 내밀며 필요한 만큼만  확실해지기로 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반응하면서 의심을 지킬 수 있었다 아주, 최소한으로 움직이면서

 

-《시산맥 》(2019년 여름호)

 

 


 

 

정영효 시인 / 성냥

 

 

말하자면 재빠른 판단 같은 것이다 툭, 하는 순간

자국을 채우면서 무너질 교각을 건너는

마침내 확신에 도달하는 가정처럼

온전한 빌미를 딛기 위해 형체를 추적하는

함정에 가까워지는 건너편과

사라질 직전까지 자리를 겨냥해야 하는 위기

불이라는 것 사물을 쫓는 날쌘 투기는

소모될 길이를 세며 솔직해진다

편리가 익숙해져 낭비를 감추더라도 이것은 당연한

그래서 이변을 기대하기 힘든 기회

단번이 내미는 빠듯한 곡예를 만진다

지친 질량을 버리고

복종을 거부할수록 더욱 드세질 후문을 붙잡는다

순간이라는, 얼이 빠져버린 고통은

속박이라 불러도 좋을 성질이라서

어딘가로 던져줘야 할 성냥을 끝까지 들고 있으면

생몰의 거리에서 잠깐

남은 어귀와 다급한 집념이 어긋날 듯하지만

검은 뒤꼍이 이미 물러나기 시작한다

도착이 안내하는 원근이 허방 너머로 미뤄진다

사그라지는 귀퉁이에서 완성되는 붕괴, 결국

단번의 부족함이 잇는 방향은 의심이 없어서 다급하다

반복된 각오처럼 열기로 이어지는 마지막

다 타버린 길이에 내가 화해하고픈 방해들이 남는다

 

 


 

정영효 시인

1979년 경남 남해에서 출생. 동국대 국문과 졸업. 同 대학원에 재학 中. 200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계속 열리는 믿음』(문학동네, 2015)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