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임 시인 / 산책 우리는 발자국을 얼음처럼 떨어뜨렸다 파고의 푸름 속에 일렁이며 저승 나비 무늬 무덤의 가장자리마다 핀다던 마른 꽃으로 굳었다 물이 핥고 가는 산호처럼 나의 시간을 빚어 실루엣을 만들었다 그림자를 볼 때마다 그대를 떠올렸다 뒤집으면 다시 시작되는 유리 속 황금시대 좋았던 날들만 무한재생하는 착각과 망각의 틈새마다 우리는 조약돌처럼 은닉했다 눈 감아라 뚝딱 꼬리를 늘이며 달아나는 술래, 손가락이 찾아 주길 기다리며
이용임 시인 / 아름다움은 조용히 나는 바다를 건너고 있어 달밤에, 잃어버린 말들을 만지고 있어 꽃잎을, 여자가 흘린 속삭임을 보고 있어 천 년 동안, 나비의 혈관으로 흩어진 하늘과 헤아릴 수 없는 귀들이 열린 파도 위를 맨발로, 걷고 있어 비밀을, 꿈의 심장을, 한밤에 고인 눈물을, 꿈은 닳고 있어 오래오래, 골목을 돌아 들판을 건너 절벽에 이르러 길들이 몸을 던질 때 이야기들이 빛나고 있어 바위 위에서, 물이 그림자를 던지고 있어 먼 곳으로, 나는 떠나고 있어 모든 내부가 환해지는 시간에, 투명한 뼈들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어 궁륭을 떠받친 기둥들, 닿을 수 없는 이름을 부르며 한없이 가늘어지고 있어 손가락부터 발가락부터 속눈썹부터 차례로, 공기가 되고 있어 창문들이 하나 둘 닫히는 시간에 구름이, 얼굴을 놓고 가고 있어 나는 풍경이 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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