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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자규 시인 / 만개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12.

이자규 시인 / 만개

 

 

배추 단을 다 팔고 난 소쿠리에 가벼움 속

새벽 선창가 고함지른 경매 후에 먹는 선짓국

엄마 배 속에서 갓 나온 신생아의 첫 울음

 

사지 장애인의 구필 그림 완성 후에 미소

실수와 실수를 뛰어넘은 악수의 체온

 

그 어떤 꽃들보다 훨씬 경이로운 시간

가장 부유한 웃음꽃 피웠을 때 비로소 다가오는 사람의 노래는 어디서 오는가.

 

-시집 『돌과 나비』 (서정시학2015)

 

 


 

 

이자규 시인 / 연꽃

 

 

평생 진흙에 발 담그고 살아야하는

여자

벼랑 아래 캄캄한 수렁바닥

꽹과리와 징소리로 보들보들한 등짝을 밀면

밥이 한 소쿠리다

마디마디 추락하는 생의 뒤에서 떠오르는 별의

색깔은 어디서 오는지 방죽 옆구리

이름없이 피고지는 소문을 이고

아이들이 커나간다

집성촌 새 호적에 실낱 뿌리를 묻고

귀 열어보면

마지막 무대처럼 꽃이 지는 황혼녘

바람이 물 위로 고요하다

연잎 위의 개구리, 누구를 찾아 헤매는지

물이 잡고 있는 몸의 깊이 만큼 흔들려서

젖은 꿈 옮겨나가 연분홍으로 필

물관 통신의

여자

바르르 엄지발가락이 돋보인다

 

-2014 하반기 '서정과 현실' 23호

 

 


 

이자규 시인

1953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 2001년 계간 《시안》으로 등단. 시집으로 『우물치는여자』 『돌과나비』가 있음. 현재 대구시인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