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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혜선 시인 / 날마다가 봄날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13.

이혜선 시인 / 날마다가 봄날

 

 

돋아나는 새풀에게

길가에 핀 민들레에게

마냥 웃음 흘리고 다녀도

실없다 하지 않고 품어주는

 

귀 맑은 햇살이랑

세상에서 가장 청맑고 빛나는 웃음소리

 

평생 퍼낼 수 있는

종신보험통장에 저축해 놓았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

날마다 봄날

 

그냥 실실 그냥 빙그레 그냥 활짝, 웃음이 나오는

날마다 봄날

 

 


 

 

이혜선 시인 / 간장사리

 

시어머니 제사 파젯날

베란다 한 구석에 잊은 듯 서 있던 간장 항아리 모셔와

작은 단지에 옮겨 부었다

20년 다리 오그리고 있던 밑바닥을 주걱으로 긁어내리자

연갈색 사리들이 주르르 쏟아진다

툇마루로도 없는 영주땅 우수골 낮은 지붕 아래

허리 구부리고 날마다 이고 나르던

체수 작은 몸피보다 더 큰 꽃숭어리들

알알이 갈색 씨앗 영글어 환한 몸 사리로 누우셨구나

내외간 살다 보먼 궂은 날도 있것제

묵은 정을 햇볕삼아 말려가며 살아라

담 너머 이웃집 보먼 연기도 더러 챙기며

묵을수록 약이 되는 사리 하나 품고 살거라

먼 길 행사 가는 짚신발 행여나 즌데를 디디올셰라

명일동 안산에 달하 노피곰 돋아서

어그야 멀리곰 비추고 있구나*

이승 저승 가시울 넘어 맨발로 달려오신

어머니의 간장사리

* 백제가요 '정읍사'에서 차용

 

 


 

이혜선(李惠仙) 시인

1950년 경남 함안에서 출생. 1981년 월간 『시문학』 으로 등단. 동국대학교 국문과, 세종대학교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시집 『神 한 마리』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이』 『바람 한 분 만나시거든』 『새소리 택배』 한국 현대시인상, 동국문학상, 문학비평가협회상(평론부문), 선사문학상, 윤동주문학상,등을 수상. 동국대 외래 교수, 세종대 강사, 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등을 역임. 현재 동국문학인회 회장. 한국 문인협회와 국제 펜 한국본부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