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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장철문 시인 / 담쟁이 물드는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29.

장철문 시인 / 담쟁이 물드는

 

 

내 남자라는 말

내 여자라는 말

참 하릴없는 말

개울가

첫 상추 씹히는

 

돌확에 생고추

얼갈이 겉저리

 

부득불

광덕보다도 엄장

노힐부득보다도 달달박박

 

아이는 자라고

담쟁이 물들고

 

내 여자라는 말

내 남자라는 말

참 불가항력의 말

석벽의

햇살,

담쟁이 잎사귀

맨 처음

짐승이 사람 되던 때의

 

 


 

 

장철문 시인 / 하여간

 

 

술자리에서 들은 얘기라 어떨진 모르겠는데, 하여간

청어라는 물고기가 있다는데, 하여간

그게 횟감으로는 참 끝내준다는데, 하여간

그놈 성질이 하도 급한 나머지

배 위로 올라오자마자 목숨을 탁 놓아버리는 바람에

그 착 감기는 살맛 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것인데, 하여간

어느 코쟁이 나라의 좀 똘망똘망한 어부가

어찌하면 이걸 산 채로 도시에 가져가서 팔아먹을 수 있을까

밤낮으로 짱돌을 굴리다가

아하 그렇지!

그럴싸한 수를 한 가지 냈다는 것인데, 하여간

큼지막한 어항을 하나 만들어설라무네

거기 바다메기를 몇 마리 풀어놓고는

청어란 놈을 잡아 올리는 족족

어항에 집어넣어서는

득달같이 도시로 내달았다는 것인데, 하여간

청어란 놈은 바다메기한테 잡아 먹힐까봐

어항 속에서 뺑뺑이를 도느라고

미처 죽을 새가 없다는 것인데, 하여간

(그 어항은 얼만할까

'서울만 할까,

우리 동네 등대횟집 수족관만 할까, 하여간)

잡아먹히는 놈은 잡아먹히고

헐레벌떡,

살아남은 놈은 또 살아남아서

식도락가들의 혀를 착착 감고 도는

값비싼 횟감이 되었다는 것인데, 하여간

지난 달에 사상 최대로 폭등했다던 주식이

오늘은

사상 최대로 폭락했다고

신문마다 채널마다 악을 써싸는 것인데, 하여간

 

 


 

장철문 시인

1966년 전북 장수 출생.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 1994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마른 풀잎의 노래> 외 6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 시집으로 <바람의 서쪽> <산벚나무의 저녁>이 있음. 연세대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현재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