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란 시인(상주) / 뽁뽁이 Bubble Wrap
이 작은 우주 안에도 냉골과 온돌이 있어 바람이 불고 혁명이 회오리치고 있을까
엄지와 검지 사이에 힘을 준다 작은 비닐의 방에 갇힌 공기들 탈출시킨다
지문을 뭉개듯 촘촘히 배열된 우주를 문지르면 작은 저항 끝에 공기방울들 완두콩처럼 튀어 나간다 공기들이 공중으로 돌아간다
손끝이 짓는 작은 동작에 이토록 기쁘게 대답해 준 음악이 있었을까 장조의 음표들 언제 갇혀 있었느냐는 듯 경쾌하다
공기에게 무슨 예각의 허물이 있나 맡은 바 거품의 소임이 끝나면 더 이상 작은 조각으로 나뉠 이유도 없는 때가 온다
깨지기 쉬운 접시들은 모른다 유리 멘탈을 감싸느라 얼마나 많은 공기 방울들이 층층이 겹겹이 숨죽이는지, 그저 제 연약함을 호소하느라 바쁠 뿐
파손주의, 빗금 친 유리잔 스티커가 지켜내지 못하는 슬픔을 배달하기 위해서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서 뽁뽁이로 지내는 날들이 길었다
내가 나를 뽁뽁이로 꼭꼭 싸주어야 할 때가 있다
위험한 걸까 과민한 걸까 어떤 물목이 되어 먼 곳으로 배달되어야 하는 것일까
나와 나 사이에 잠시 완충지대가 필요했을까
탄력 있는 공기가 빠져나간 비닐이 허물처럼 널부러진다 예민한 생물이 탈피를 끝내고 길게 빠져나간 듯
계간 『시와 편견』 2022년 봄호 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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