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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허형만 시인 / 오독誤讀 1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30.

허형만 시인 / 오독誤讀 1

 

 

너, 큰 실수한 거야

나를 잘못 읽었어!

사람이 한세상 살면서

행간과 행간 사이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 넌 모른 거야

오독誤讀은, 오, 독毒이란 걸 알아야지

행간과 행간 사이

때로는 쉼표와 마침표에도 스며 있는

순수한 영혼

빛살과 바람의 그림자도 읽어야지

너, 정말이지 큰 실수한 거야

나를 잘못 읽었어!

얻어도 놀라고

잃어도 놀라는 세상에

혼자, 혼자, 라는 것도 지우고

조용히, 조용히, 라는 것마저 버려

나에게 내 몸이 없으니

나에게 아무 근심도 없다는 사실을

그대로 온전히 읽었어야지

덧칠하고 비틀고 뒤집는

오독誤讀이야말로 오, 독毒이란 걸 알아야지

너, 큰 실수한 거야

나를 잘못 읽었어!

 

 


 

 

허형만 시인 / 가랑잎처럼 가벼운 숲

 

 

숲길 누리장나무 아래

검정 상복을 입은 개미들이

참매미의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이미 여름은 끝났는데

한순간의 작렬했던 외침은

지금쯤 어느 골짜기를 흘러가고 있을까.

오후 여섯 시, 햇살이 서서히 자리를 뜨는 시간

부전나비 한 마리

누구 상인가 하고 잠시 기웃거리다 떠나가고

이제 곧 가을이 깊어지리라.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게

숲을 끌고 가는 개미들의 행렬

숲은 가랑잎처럼 가볍다.

 

 


 

허형만 시인

1945년 전남 순천에서 출생. 중앙대 국문과와  성신여대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1973년《월간문학》을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청명』, 『풀잎이 하나님에게』, 『모기장을 걷는다』, 『입맞추기』, 『이 어둠속에 쭈그려 앉아』, 『공초』, 『진달래 산천』, 『풀무치는무기가 없다』 『있으라 하신 자리에』 등과 시선집으로 『새벽』, 활판시선집 『그늘』 등과 평론집으로 『시와 역사 인식』, 『영랑 김윤식 연구』 등이 있음. 한국시인협회상, 영랑시문학상, 한성기문학상, 전라남도 문화상, 우리문학작품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목포대학교 인문과학대학장 겸 교육대학원장.